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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아이돌’의 탄생 과정, 그 현장을 가보니...
26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삼일빌딩 지하 1층. 면접 장소다. 그런데 지원자들의 복장이 심하게 자유롭다. 색색의 트레이닝 복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이도 있다. 긴장으로 인한 적막감 대신 소음(?)이 함께 한다. ‘아아아~’ ‘디리디리디~’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른다. 한편에서는 발을 구르고 점프를 하면서 몸을 푼다. 오디뮤지컬컴퍼니와 DSP미디어의 ‘뮤지컬 아이돌 프로젝트’ 2차 오디션 현장이다.

이번에 선발되면 오디뮤지컬컴퍼니의 뮤지컬 ‘그리스’에 출연할 뿐만 아니라 DSP미디어에서 음반을 내고 가수로도 데뷔할 수 있다. 뮤지컬 배우와 동시에 가수가 되는 기회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까지 접수한 이번 프로젝트의 지원자는 1000여 명. 하나 같이 노래와 춤뿐 아니라 연기까지 자신있다는 이들이 모였다. 서류 심사를 거친 500명의 지원자들은 지난 19일부터 3일 간 진행된 1차 오디션을 통해 70명 정도로 추려졌다.

이날 2차 오디션은 자신이 선정한 자유곡을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고 준비한 연기와 안무를 선보이는 자리.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 솔로일지, 그룹일지,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노래+연기+춤, 3박자를 고루
=준비한 연기의 대사 외에 말은 거의 필요없다. “시작하겠습니다”로 출발해 “잘 봤습니다” 혹은 “수고했어요”라는 말로 끝난다. 한 명당 주어진 시간은 3분 남짓. 짧은 시간에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와 안무까지, 보여줘야 할 것이 많은 지원자들은 마음이 급하다.
한번도 무대에 선 경험이 없는 이부터 다양한 뮤지컬에 출연했고 곧 개막을 앞둔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 커버로 출연하는 배우도 있다. 연습실 밖 대기자들은 창가에 나란히 붙어서서 안을 들여다본다. 금세 유리창엔 하얀 입김이 서린다.

그 열기는 연습실 안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는 지원자에게 “그 연기를 좀 가볍게, 까불면서 한번 해볼래요”라는 주문이 떨어지기도 하고 남자 지원자에게 “여자 역이라고 생각하고 그 대사를 해보세요”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한 지원자는 격렬한 안무를 선보이며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거칠게 찢어 보이기도 한다. 심사위원석에서 탄성과 웃음이 함께 터지자 그는 쑥쓰러워 하며 “보여줄 것이 몸 밖에 없어서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농구선수 출신인 이민수(26)씨는 ‘그리스’의 대니 역을 지원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와 ‘마리아마리아’ 등에서 앙상블로 무대에 서기도 했던 그는 오디션을 본 후 “노래할 때는 박자에서 실수했고 춤추다 발목이 삐끗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뮤지컬 배우 김무열을 닮았다는 이유로 발탁돼 패션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그리스’는 젊었을 때 꼭 한번 서보고 싶은 무대”라고 지원동기를 밝혔다.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김태민(23)씨는 “예전에 DSP로부터 가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우선 뮤지컬을 하고 싶어 거절한 적이 있다”며 ‘그리스’ 배역에 욕심을 보였다. ‘그리스’ 오디션만 다섯번째라는 박현재(24)씨는 “스물한 살 때 처음 ‘그리스’ 오디션을 봤는데 벌써 스물 다섯이 됐다”며 “오디션을 볼 때마다 감기에 걸리는 징크스가 있다”며 아쉬워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인 이호걸 군은 이번 오디션의 최연소 지원자다. 세종대학교 오디션과 동시에 영화예술학과 합격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을 키웠다”며 “이번 오디션에서 선발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백이 있는 사람, 가능성을 본다
=영화와 드라마로 영역을 확대해가는 뮤지컬 배우들이 많다. 아이돌 그룹에서 활약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을 하며 가수 활동을 하는 아이돌을 처음부터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오디션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다.

이번 오디션에서 원미솔 음악감독, 정태영 연출, 오종헌 DSP미디어 매니지먼트 팀장 등과 함께 심사를 맡은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는 “뮤지컬을 할 때마다 오디션은 진행해왔지만 연예매니지먼트 전문 제작사와 함께 하는 것은 첫 시도”라며 “DSP미디어의 역할은 대중에 더 가까이 다가가 시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스타의 티켓 파워는 이미 ‘모차르트!’ ‘삼총사’ ‘스팸어랏’ 등을 통해 증명됐다. 하지만 빡빡한 일정 탓에 연습량이 부족하고 일부 연기와 노래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 이번 오디션에 선발되면 지속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노래와 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가수 활동을 병행한다.

신춘수 대표는 “프로듀서로서의 기준과 연출, 음악감독이 보는 것은 다를 수 있지만 일단 나는 직관적으로 스타로서의 매력을 본다”며 “현재 지니고 있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오디션에서는 이미 갖춰진 것보다는 여백이 있는 사람을 택한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지금 뮤지컬계에서 주역으로 활동 중인 김우형과 조정석도 그의 눈에 든 것이 시작이었다.

특히 ‘그리스’는 다양한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뮤지컬.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제 2의 뮤지컬 아이돌 프로젝트’도 기획될 수 있다. 신 대표는 “‘그리스’로 공연과 동시에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며 “공연으로 성장의 기회를 주고 그 가능성을 파악하는 과정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출연과 음반 발매로 경험을 쌓으며 무대를 익히고 다른 무대에서도 주역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그 주인공은 오는 31일 밝혀진다.

윤정현 기자/hit@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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