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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표, 시간여행자의 ‘지문’
특수잉크 쓰고 미세문자 넣고 향기까지 입는 우표

그 시들지 않는 아날로그 정신



문제 하나. 규격봉투에 붙이는 보통우표 기본요금은 얼마일까? 모른다고? 괜찮다. 그게 정상이다.

전화, e-메일에 휴대폰 문자메시지, 인터넷 메신저, 트위터까지.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넘쳐난다. 온라인 전성시대다. 클릭 몇 번에, 버튼 몇 번 누르면 바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드는 비용도 싸다. 심지어 무료도 많다. 수없이 오가는 연하장, 고지서, 택배, 소포에서 우표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코드나 우편집중국의 ‘요금 별납’ 인쇄 문양이 대신 차지했다. 수치로만 본다면야 우표산업은 위기다. 2003년만 해도 괜찮았다. 기념우표, 보통우표 모두 합쳐 3억6864만장이 팔려 나갔다. 1070억9300만원어치다. 7년이 흘러 지난해 우표 판매량은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우표를 만드는 사람도, 수집하는 사람도 누구도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 우표의 매력은 여전하고 하나의 문화로 당당히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진화할 뿐이다.

▶우표 위기다? 아니다!=한때 우표는 최대 전성기를 누렸다. 우편제도가 발전하면서 전 세계에 우표 수집 열풍이 풀었다. 정보기술(IT) 산업이 발전하기 전인 1960~70년대 그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국내 우표 인구가 100만명 이른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중앙우체국(현 우정사업본부)에서 새 우표가 발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전날 밤을 새워가며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장사진이 펼쳐졌다. 인파가 몰리면서 우체국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현재 한국우취연합 소속 회원은 전국 57개 단체를 중심으로 1000여명 정도 된다. 우표단체 소속이 아닌 국내 우취인은 7000여명 정도다. 통신판매로 우표집을 받아보는 사람 1만여명도 열성 우표 수집인으로 꼽힌다. 과거에 비해 우표 수집 인구는 많이 줄긴 했지만 그들의 우표에 대한 애정만큼은 여전하다. 


모지원 우정사업본부 디자인실장은 “우표 열풍이 다시 부활한다는 이상은 꿈꾸지 않는다”면서도 “우표의 정통성이나 정체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한다.

우표 크기는 보통 가로, 세로 2~4㎝에 불과하다. 작고 한정된 공간이지만 담을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모 실장은 “우표를 만들고, 편지를 쓰고, 배달하는 사람까지 우표의 뒷면에는 아날로그의 숨쉬고 있는 풍경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수잉크로 쓰고, 미세문자를 넣고, 향기까지 입힌 다양한 우표가 있다”면서 “모양도 네모에서 벗어나 원형, 하트까지 우표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우표, 작지만 또 무한대인 세계=최근 독도와 2010년 캐나다 벤쿠버 동계올림픽 기념우표가 큰 인기를 끌었다. 김연아 선수 등 금메달 수상자의 모습이 담긴 우표가 많이 팔렸다. 미세문자 등 특수기술이 담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도 작년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나라 우표 수집가가 가장 주목하는 우표는 단연 ‘한국 최초의 우표’다. 일명 수집가 사이에서 ‘문위우표’라고도 불리는 이 우표는 1884년 발행됐다. 신진개혁파 정치인이었던 홍영식이 신식 우편제도를 도입하면서 우정총국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선보일 수 있었다. 

‘나만의 우표’ 모습(사진 오른쪽 맨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으로 만드는 ‘주문 제작형’ 우표다. 영화 포스터를 새겨넣은 우표부터 동그랗게 잘린 우표까지. 우표는 지금도 진화하는 중이다.                                                                                  그래픽=이은경/ pony713@heraldcorp.com

하지만 신진개혁파의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면서 최초의 우표는 제대로 널리 사용되지도 못한 채 우정총국과 함께 짧은 역사를 끝냈다. 기구한 역사만큼이나 희소성이 큰 우표다. 아쉽게도 시중에 유통되는 문위우표 중 가짜가 많다고 한다. 거기에 실제 사용돼 소인이 찍혀 있는 문위우표는 아직까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그 우표가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수천~수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후문이다.

기다리던 정답 발표 시간. 앞에서 던진 질문의 답은 250원이다. 규격봉투에 붙이는 보통우표 기본요금을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참고로 엽서용 우표는 220원이고, 규격이 아닌 봉투에 붙이는 우표의 기본요금은 340원이다. 물론 기념우표, 보통우표 할 것 없이 최고 2000원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우표가 있다.

조현숙 기자/ newear@heraldcorp.com



우표수집과 관련된 용어들

▶우취(philately)=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를 줄인 말이다. 우표 수집가는 스스로를 우취인이라 부른다. 단순히 우표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우표에 담긴 문화나 역사를 탐구한다는 자긍심도 이 용어에 담겨 있다.

▶초일봉피(First Day Cover)=우표가 발행된 첫날에 우표 소인이 찍혀 있는 봉투를 의미한다. 초일봉이라 줄여 말하기도 한다. 우취인 사이에서 봉투란 말보다 봉피라는 말이 주로 쓰인다.

▶까세(Cachet)=우편봉투에 그려진 도안을 말한다. 보통 기념우표 발행에 맞춰 해당 우표와 디자인을 맞춘 그림이 들어가 있는 봉투가 만들어진다.

▶인면(Image Size)=우표 도안이 인쇄된 부분을 의미한다.

▶투문(water mark)=우표의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우표용지 제조과정에서 넣은 무늬나 문자를 뜻한다. 우리나라 우표에는 파형 투문과 지그재그 투문, 우정마크 투문 등이 담겨 있다.

▶일부인(a date stamp)=사용한 우표에 찍혀 있는 소인으로 일종의 도장 표시다. 우체국명, 날짜, 우편번호 등이 표시돼 있다.

▶힌지(Hinge), 마운트(Mount)=모두 수집한 우표를 수집 책자에 고정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다. 힌지는 일종의 유산지로 양면에 풀이 묻어 있어 우표를 붙이는 데 사용한다. 마운트는 우표에 씌우는 봉투 형태의 비닐이다. 힌지는 우표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마운트를 많이 쓴다. 옛날 우표를 거래할 때 힌지 자국이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newear@heraldcorp.com



이교용 한국우취연합 회장

“우표수집 문화 질적 측면서 발전 온라인우표 등장도”



지난 19일 한국우취연합 대표 자리에 오른 이교용 회장은 30여년 우표를 수집해왔다. 우취보급 담당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우정사업본부장까지 오랜 공직생활 동안 일터에서도 우표와 함께했다. 그만큼 우표에 대한 사랑이 크다. 우표가 위기냐는 물음에 그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이 회장은 “최근 10년 동안 우표 수집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답보 상태인 것은 맞다”면서도 “양적인 면에서는 그렇지만 질적인 면에서 오히려 크게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우취연맹(FIP)이 공인한 세계적인 우표 전시회는 매년 3~4번 열린다. 그는 “전 세계 많은 우취인이 모인 전시회에서 한국인은 지금도 매해 5~6개 상을 휩쓸고 있다”고 전했다.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은 “라디오가 나왔을 때 신문이, TV가 나왔을 때 영화가 사라질 것이라 말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 각각의 문화는 잘 살아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특별하면서 유익한 취미활동인 우표 수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정보기술(IT)과 우표를 접목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그리고 이 회장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졸업철이라 아이들 진로와 꿈에 대한 학부모 고민을 많이 듣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즉흥적 문화와 입시 위주 교육에 매달리는 것보다 우표 수집을 부모, 아이가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문화, 역사, 전통, 예술이 담겨 있는 우표를 통해 여러가지 지식과 지혜를 나누면서 아이들 흥미와 관심거리도 미리미리 알 수 있을 겁니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newe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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