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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만원권 어디갔나 했더니... ‘5만원권의 경제학’
장롱인줄 알았더니 한 술 더 떠 마늘밭이었다. 작가 박완서씨는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는지 궁금해 했지만 한국은행은 그 많은 5만원권이 어디 숨었나가 늘 관심사였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사건이 그 궁금증의 일단을 보여준다.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로 거액을 벌어들인 법인이 구속되기 전 인척을 시켜 마늘밭에 거액의 돈을 숨겼다가 들통이 난 일이다. 한 두푼도 아니고 100억원이 넘는 뭉칫돈이 땅 속에 묻혀 있었다. 떳떳치 못한 돈이니 예금할 수도 없었을 테고, 분량도 줄이려 5만원권으로 숨긴 것이다.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한 검은 돈으로 쌓여가고 있다’는 괴담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이다. 지난 2009년 6월 5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계속 돈은 풀려 나가는데 내 지갑에선 보기 힘든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이미 발행되기 전부터 5만원권이 지하경제를 키울 수 있는 우려가 제기돼 왔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의 총액(20조1076억원)은 발행된지 1년 9개월만에 1만원권(20조761억원)을 추월한 상태다. 장수로 따지면 약 4억215만장. 국민 1인당 5만원권 9장씩을 들고 있는 셈이다. 유통비중으로 보면 5만원권이 전체 47.2%에 달하고, 1만원권은 47.1%로 5만원권 발행 전(92.2%)보다 45.1%포인트나 하락했다.

1970년대 1만원권과 5천원권이 최초로 발행될 때와 비교해보면 5만원권의 시중 유통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발행 후 유통비중이 20%를 넘기기까지 5천원권이 10개월, 1만원권이 17개월 걸린데 비해 5만원권은 단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5만원권의 행방찾기는 국회에서도 관심거리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일부 의원들은 “시중에 보이지 않는 5만원권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한은이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한은은 5만원권이 대체로 현금 구매비중이 높은 곳, 가령 의류도매 상가나 경매장, 우시장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현찰로 거래되다가 은행으로 돌아오지 않고 ‘장롱 속’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중에서는 고액 자산가들이 상속ㆍ증여의 부담을 덜기 위해 5만원권을 쌓아두고 있다는 얘기도 많다. 고액 세금 체납자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5만원권 다발이 발견되는 것도 그런 연유로 보고 있다.

한은은 경제규모가 확대되면서 고액권에 대한 수요가 커진데다 휴대나 결제의 편의성 때문에 5만원권의 유통비중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지는 확실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추적이 가능한 수표도 아니고 꼬리표가 없는 현금이 어디로 유통되는지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게 사실이지만, 5만원권의 경제적 효용을 강조해온 한은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은은 한 때 일부 5만원권 지폐에 전자태그를 붙여 유통경로를 파악하려 했었다.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달아 위치를 추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이는 한은이 돈의 흐름까지 꿰뚫어보는 ‘빅브라더’로서 역할을 하는 무시무시한 일이어서 내부 검토로만 그쳤다.

한은은 이달 국회에서 ‘5만원권 괴담’에 대한 답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흥모 한은 발권국장은 “신권이 나오면 처음에는 발행만 되고 회수는 안되는 현상이 있다”며 “최근들어 5만원권 순발행 규모가 줄어들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5만원권도 정상적인 유통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조심스럽게 점쳤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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