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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땀한땀 수놓듯 주변부에 빛을 불어넣은 변선영의 회화
정물화를 그릴 때 화가들은 탁자에 놓인 꽃이며 과일을 그린다. 풍경화도 마찬가지다. 중심에 자리잡은 나무며 집을 그린다. 그런데 화가 변선영(44)은 엉뚱하게도 주변을 그린다. 벽지라든가 커튼, 바닥을 표현하는 것. 남들과 다른 이 별난(?) 접근으로 제작한 그림들이 한데 모였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아트사이드(대표 이동재)가 변선영 작가를 초대해 개인전을 꾸몄다. 전시타이틀은 ‘가치의 부재, 공간에 놓이다’. 오는 5월 22일까지 열리는 전시에 변선영은 밝고 화사한 벽지를 배경으로 물건들이 가득 놓인 이색 실내풍경 연작을 출품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독일에서 활동 중인 변선영은 지난 2008, 2009년 독일의 갤러리에서 풍부한 색채와 색다른 구성의 회화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유럽 내에서 지금도 전시 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서울전에는 독일서 선보였던 작품들과, 가로 3m가 넘는 신작 등 19점이 갤러리 2개층을 가득 채웠다.


‘가치의 부재’를 테마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따뜻한 색채와 끝없이 반복되는 화려한 패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이란 요소를 통해 삶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살필 수 있어 도드라진다.

변선영은 지극히 냉정한 관점으로 사물들을 늘어놓음으로써 관객의 시점을 분산시킨다. 동시에 정교하기 짝이 없는 디테일로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분산과 집중을 통해 관객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흥미로운 공간 속을 거닐게 된다.



작가는 "어느날 모두들 중심으로 떠받드는 것들이 시들하게 느껴졌다. 싫증이 났다고 할까? 그래서 그 중심을 허연 형태만 살리고,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 색채와 패턴을 넣어 부각시켰다"고 밝혔다. 변선영의 작품은 때문에 특유의 공간을 형성한다. 사소한 것들, 주변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중심의 부재로 떠올랐던 주변은 단순히 중심을 대체할 뿐 아니라, 과거 중심의 존재방식을 끌어안고 융합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게 된다.

변선영의 실내 풍경에는 리히텐슈타인, 마그리트 등 동서양 명화이미지와 정물, 벽지패턴, 가구들이 시공간, 문화를 넘나들며 혼재돼 있다. 과잉으로 소비되고 향유되는 이미지와 물건들, 끝없이 반복되는 문양에, 모든 걸 일일이 붓으로 채워나간 공력까지 얹혀져 화면은 어지럽고 강렬하다. 


작가는 바늘로 한땀한땀 수놓듯 패턴을 디자인하고 그려나갔다. 한없이 증식하는 패턴은 하찮게 보이는 가치들을 하나로 꿰어가며, 빛나는 대상으로 만든다. 텅빈 공간은 문양들로 가득 차고, 스토리와 환영으로 넘실댄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경기대 교수)는 "변선영의 그림은 고급미술과 저급미술, 동양화(서예)와 서양화, 키치그림과 기하학적 벽지문양, 레이스와 미니멀한 무늬, 민화 등이 본래 문맥에서 이탈돼 일종의 패러디로도 다가온다. 이 같은 정신없는 실내풍경은 오늘날 우리의 문화적 초상이자 정체성의 혼돈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실 이런 분열증이 우리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02)725-1020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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