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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언권 세지만…고단한 한국의 ‘갓 마더’
왕에게 권력을 주지 않는 입헌군주제는 오늘날 한국 가정을 닮았다. 가정 권력의 여성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아버지는 ‘형식적 대표’로 자리메김되는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여성은 행복할까. 커진 권력 만큼이나 책임감도 커진 가운데 왕의 자리에 앉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태도는 일과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우리의 ‘슈퍼우먼’들을 더욱 고단하게 한다. 사회에서는 여전히 차별받고 있기에 가정내 정권 장악만으로 행복이라 말 할 수는 없다. 2011년 한국 어머니 권력의 실체를 들여다 보았다.


▶“남자보다 가정내 발언권 세다” 52% vs. “약하다” 27%

권력은 여성에게 일견 달콤해 보인다. 경제권을 장악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은행 보안계좌 등으로 몰래 ‘비자금’을 챙기려는 남편들의 꼼수를 적발했을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이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공권력 행사에 따른 묘한 쾌감을 잠시 느낄 수 있다.

가족내 발언권도 세졌다. 인쿠르트 조사결과 여성응답자 중 ‘내 발언권이 남편이나 남자형제보다 세다’는 의견이 52%, ‘그렇지 않다’는 27%였다. ‘딸로서 (친정)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45.0%, ‘느끼지 않는다’는 15.4%였다.
  


▶처가살이 하겠다는 남성 35년새 2.6% → 63.3%

친정의 역할도 커져 여성들은 위로는 친정어머니 아래로는 딸과의 3각 연대로 의사결정 구도를 장악하고 있다. 2009년 한 취업포털의 조사결과 남학생들의 63.3%가 ‘처가살이도 좋다’고 했다. 1974년 이화여대 조사에서 처가부모를 모시겠다는 남학생은 2.6%에 불과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청소년 6979명을 대상으로 ‘가족이라고 느낄만한 삼촌,사촌의 순위’를 조사(복수응답)했더니 ‘이모’(83.4%)가 1위, 외삼촌(81.9%)이 2위였다. 5위인 이모부(78.7%)는 9위인 고모부(77.5%)를 따돌렸다. 연구원측은 “가족관이 부계-혈연 중심에서 모계-생활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사진= 헤럴드경제 사진DB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딸선호 39~40% 아들선호 26~30%

딸의 주가도 치솟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달 29일 정책세미나를 통해 발표한 조사결과 임신 중 선호한 자녀의 성별은 아버지의 경우 딸이 40.7%, 아들이 26.1%, 어머니의 경우 딸 39.5%, 아들 30.3%로 나타났다. 2년전 조사때보다 딸과 아들 간 선호도 격차가 더 벌어졌다.

뉴욕타임즈는 2007년 12월 ‘아들이 왕인 나라 한국이 딸 선호 국가로 변하고 있다(Korea, Where Boys Were Kings, a Shift Toward Baby Girls)’는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딸은 왜 제사에 오지않느냐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곤 했는데, 오직 아들만이 혈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20대 후반 기혼여성의 말과 성비불균형의 기세가 2002년부터 꺾이더니 2006년 보건사회연구원이 45세 미만 5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의견이 10%로 15년전에 비해 40%포인트나 낮아졌다는 통계를 인용하기도 했다.


▶가정은 봉건시대엔 일터, 지금은 쉼터

이처럼 권력은 여성에게 이동했지만 여전히 가장의 지위를 지키려는 남성의 관성은 많은 갈등요인을 낳는다. 농경사회에서 가족은 일터공동체였다. 힘센 남성이 일의 주도권을 잡고, 가정일은 여성이 맡는 식의 분업이 정착됐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밖에서 일한 뒤, 가정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쉼터’로서 기능하는 곳인데도, 함께 해야 할 가사노동은 여성이 도맡다시피 한다. 가족 갈등의 요인이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감히 왕노릇을 하려는 ‘간 큰 남자’시리즈가 쓴 웃음과 함께 회자되는 모습은 이 시대 남성의 자화상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아내에게 밥 달라고 식탁에 앉아있는 남자 ‘아내에게 밥 달라고 식탁에 앉아있는 남자 ▷밤늦게 귀가하는 아내에게 어디 갔다왔는지 묻는 남자 ▷반찬 투정하는 남자 ▷아내가 잔소리 하는데 말을 끊는 남자 ▷아내가 연속극을 보는데 야구 본다며 채널을 돌리는 남자 ▷‘간 큰 남자’ 시리즈가 뭔지 모르는 남자 등이다.


▶권력 커졌지만, 가사노동시간 여전히 남성의 3배

그러나 형식적 왕좌라도 지켜보려는 가부장의 저항속에, 대다수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남성보다 훨씬 많다. 2009년말 한국인구학회 조사에 따르면,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남편이 0.6~1.1시간, 부인이 3.1~4.8시간이었다.

부부 모두 수입이 없는 가정에서조차 남편의 노동 시간은 1.6~3.2시간인 반면 부인의 노동 시간은 5.3~8.2시간에 달했다. 미취학 자녀를 돌보는 일은 부부 모두 소득이 없어도 남편은 1.0시간, 부인은 3.7시간이었다.


▶가족에선 강자, 사회에 나가면 약자인 이중적 여성지위

부인이 바깥일을 보면서도 자녀들을 돌보고, 집안살림을 챙기는 과정에서 자연히 자녀들은 부인의 결정을 따르게 되고, 자녀와 대화가 없는 남편은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형식적 가장의 지위만을 갖는 아버지에 대해 자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슈퍼우먼’이 가정 권력을 잡았지만 심신은 더욱 고달퍼졌다. 일터로 나가면 여전히 엄존하고 있는 ‘남성중심의 문화와 관행’에 불행을 느낀다. 사회진출은 급증했지만 고위직 진출은 여전히 남성중심이다.

가정 안과 밖에서의 여성 지위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은 ‘가정 민주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여자가 뭘..”, “몇 푼 벌지 않는데 아이나 돌봐”라는 얘기는 늘 여성에게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유리벽’에 울고, 가정민주화는 더디고

계급별 남녀공직 비율은 가정의 권력을 틀어쥔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는 얼마나 차별받는지를 잘 말해준다.

행정안전부 최근 통계를 보면 공무원 98만명중 여성은 40만명으로 41%를 차지한다. 9급은 53%, 8급은 49%, 7급은 39%가 여성이다. 그러나 6급 18.3%, 5급 10%, 4급 6.5% 3급 4.6% 2급 2.6%로 여성은 홀대받고 있다.

전문직, 국회의원, 행정관리직의 여성비율 순위에서 한국의 세계 60~100위권이다. 손녀,손자를 돌보지 않으려는 고령층이 조금씩 늘고 있는 가운데 집안문제, 애들 양육문제 때문에 여성들은 경력이 높아질수록 더 큰 벽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가정을 돌볼 기회를...” 확산 더딘 ‘일 가정 양립’ 제도

가정내 아버지의 역할이 커질수 있도록 아버지의 인식변화, 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변화 뿐 만 아니라 사회적인 마인드 변화, 제도적 개선 등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2년전부터 ‘일 가정 양립’ 방안을 마련해놓았지만 산업계 등으로의 전파는 더디기만 하다.


▶“여성(woman)속에 남성(man) 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영어 female(여성)속에 male(남성)이 있고, womam(여자)속에 man(남자)가 있는 것은 남성은 여성을 떠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면서 “시대에 맞게 가사 분업을 하고 아버지와 자녀 간 교감의 기회를 늘리도록 아버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논문을 통해 “가부장제는 전제군주가 인민을 지배하는 원리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현대 가족은 한쪽의 지배와 한쪽의 종속 관계를 용인하지 않는다”면서 사회적 통념과 아버지 태도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입헌군주제 같은 현재 대한민국 가정공동체의 모순점을 극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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