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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강 물비늘 유리조각 뿌려놓은듯…...2천년 역사 남녘의‘작은 한양’나주 트레킹…일본식 가옥 뒤로 삭힌 홍어냄새 진동·주변엔 테마파크‘나주시 전체가 박물관’
이쯤되면 늦봄은 이미 옛날 얘기다. 초여름이다. 한낮의 수은주는 눈금 ‘30’을 향해 중력과 반대의 가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수줍게 피어올랐던 자연은 이제 부끄러움 없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진녹색을 드러낸다.
은빛, 노랑, 초록. 전남 나주의 풍광을 분광기에 통과시키면 이 세 가지 색으로 분석될까.
영산강의 굽이돎은 은빛 비늘로 이곳을 치장한다.
전남 담양군 용면에서 발원한 강은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를 통해 서해로 빠져 나가는데 그 물길이 350리. 그 기착지 가운데 강이 가장 넉넉하게 품은 곳이 나주다. 옛사람들은 전주와 나주의 앞글자를 따 전라도라는 이름을 지었다. 조선시대까지 나주는 전라도의 두 노른자위 중 하나였다.
처음 들를 곳은 영산포 등대다. 강에 등대라니. 등대 하면 망망대해나 최소한 해안을 지키는 것을 떠올리는 게 당연지사.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내륙의 하천에 만들어진 등대다.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세워진 이곳은 지금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자 등록문화재 제129호다. 영산교 끝자락에 놓인 작은(높이 8.65m) 등대. 원래 등대 기능과 더불어 자주 넘쳐나는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영산강을 말없이 바라보는 풍경의 하나가 됐다.
영산포의 역사 자체가 그러하다. 일정(日政) 때는 남해에서 건져올리는 싱싱한 해산물과 나주 평야에서 거둬온 튼실한 알곡이 모여 일본으로 공출되기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포구로서의 수명이 끝났다. 분주했던 날은 영산강의 침묵과 함께 흘러서 갔다.
쓸쓸한 은빛을 압도하는 건 강변 양편에 드넓게 펼쳐진 유채밭이 방산하는 화사한 노랑이다. 하늘대며 바람에 날리는 노란 꽃 사이로 걸으면 누구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인근 마을로 들어서면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일본풍의 가옥과 거리가 남아 있다. 옛 나주역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다. 당시 나주에서 출발한 호남선 열차에서 일본인 중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한 것이 이 지역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곳에는 예전 영산포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이 한 편을 지키며 졸고 있다.
코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푹 삭은 냄새 입자를 지나칠 리 없다. 이곳은 홍어의 거리로 유명하다. 영산교 남단 네거리를 중심으로 홍어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삭힌 홍어 하면 여기다. 고려 공민왕 때 왜구의 침탈이 심하자 흑산도 주민이 이곳 영산포로 들어와 정착하게 된다. 향수였을까. 이주민은 바다에 나가 섬에서 즐겨먹던 홍어를 잡아왔는데 영산포로 돌아오는 동안 자연숙성돼 그 풍미가 더해졌다.
홍어 거리 뒤편으로 일본식 가옥과 창고 건물이 늘어섰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이기도 했던 이곳에는 아직 일제시대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의 가옥이 우뚝 서 있다. 1935년에 지어졌는데 그 규모를 보면 당시 일제 수탈의 지긋지긋함을 떠올릴 수 있다.
나주영상테마파크로 가는 길목에는 황포돛배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옛 목선을 재현한 배를 타고 영산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강을 굽어보는 석관정과 금강정 등의 정자가 멀리 보인다. 영상테마파크는 인기 드라마 ‘주몽’의 세트장을 재단장한 곳이다. 부여와 중국의 왕궁 등을 재현해놨고, 공예와 염색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반남면고분군은 마한시대의 역사가 잠든 유적지다. 크고 작은 고분이 들판을 수놓는다.
나주천이 흐르는 읍성 안에는 서기 983년 나주목 조성 시절의 유적을 볼 수 있다.
성벽은 허물어지거나 가옥의 담장으로 흡수돼 그 자취가 희미하나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돼 읍성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관아의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정수루와 전국에서 큰 객사였던 금성관도 있다. 목사의 관사였던 금학헌에서는 숙박 체험도 할 수 있다. 나주향교의 중심인 대성전은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가 높아 보물 제394호로 지정돼 있다. 임희윤 기자/imi@
[사진=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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