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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지각의 오류’와의 싸움, 채점
답안지로 평가받는 학생

교수의 과제는 공정한 평가

모든 답안지 동등하게 대우

오류 범하지 않도록 경계필요





대학가는 이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기말고사 기간에 접어들었다. 강의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6월 둘째주 또는 셋째주면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르고 방학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고통과 긴장의 나날을 보내지만 교수들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바로 채점이다. 경영학 전공 중에서 재무나 회계와 같이 숫자를 다루는 과목은 상대적으로 채점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대개 정답이 정해져 있고 수식 또는 숫자여서 답안지를 들고 씨름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행동론과 같이 서술형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학생당 A3 크기 답안지 2~3페이지에 이르기 때문에 채점에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채점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내가 지각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즉 서술형 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각종 ‘지각의 오류’와의 싸움이다. 뛰어난 점수를 받은 학생 직후에 채점하게 되는 학생에게 점수를 상대적으로 덜 주게 되는 ‘대조효과’, 채점하는 순서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더 관대해지는 ‘초기효과’ 또는 ‘최근화효과’ 등 채점과정에서도 다양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채점할 때는 약간의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두뇌가 게을러지거나 지름길을 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점하는 동안의 컨디션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번 학기에 120여명 학생의 답안지를 채점한다면 약 3박4일 동안 꼬박 채점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나의 컨디션이 다른 상태에서 채점을 한다면 나도 모르게 컨디션이 나쁜 상태에서는 점수를 좀 인색하게 주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몸이 아프거나, 또는 화가 나 있는 상태이거나 할 때는 채점을 하지 않는다. 또는 채점을 열심히 하다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면 채점을 멈춘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순간 채점이 되는 답안지는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당히 어렵지만 심혈을 기울여 실천하는 두 번째 원칙은 글씨가 반듯하고 예쁜 학생들의 답안지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악필 답안지를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글씨를 똑바로 잘 쓰는 학생의 답이 더 우수할 것이라는 ‘정형화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실제로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는 학생의 답이 더 나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반듯한 글씨체가 우수한 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악필의 답안지는 시간을 충분히 잡고 천천히 읽는다. 악필이라는 이유로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악필임에도 내용이 만족스러울 때는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정성껏 읽었는데 내용도 좋지 않을 때는 좀 허탈하기도 하다.

이 외에도 답안지 하나를 새로 대할 때마다 마치 ‘첫 답안지’를 대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잡는다. 채점 초기에 매기는 답안지에 점수를 더 주는 오류, 반대로 채점 말기에 매기는 답안지에 점수를 더 주는 오류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혹여나 수업시간에 앞에 앉는 학생에게 나도 모르게 관대하게 채점하려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무래도 앞자리에 앉는 학생의 얼굴과 이름은 빨리 외우게 되고 호감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작업은 상당한 긴장과 경계를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여러 가지 ‘평가’가 각종 오류에 노출돼 있으며, 그 오류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만 ‘평가의 공정성’을 어느 정도라도 확보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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