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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만하면 ‘총체적 난국’...‘넌 내게 반했어’
“잘 만든 6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기분이다.”

“누구 하나 호감가는 인물이 없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만하면 ‘총체적 난국’이라 할 만하다.

훌륭한 비주얼을 가진 풋풋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드라마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수건커플’로 등극한 박신혜 정용화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뮤지컬배우로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한 송창의가 이들을 받쳐주고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등극할 소이현이 여교수로 등장해 사각로맨스의 물꼬를 텄다.

어느덧 방송 6회차, 싱그러운 여름 이야기는 몇 주내내 장맛비를 퍼붓는 우중충한 여름이 되고 말았다. 스타PD 표민수가 연출을 담당했음에도 그렇다.

드라마는 한 예술학교를 무대로 시작됐다. 해맑은 소녀는 가야금을 연주했고, 까칠한 소년은 기타줄을 퉁겼다. 브로드웨이를 장악한 젊은 연출자는 모교로 돌아왔고, 스타를 꿈꾸던 발레리나는 원치 않던 부상으로 모교의 교수로 학생들의 앞에 섰다. 이 안에는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만들어내는 사각 로맨스가 자리하며 얽히고 설킨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전체 줄기를 놓고 보자면 다양한 이야기가 뻗어나가 갈등을 만들고 드라마의 구성을 발전시킬 만한 소재였다. 거기에 청춘의 열정이 기저를 이룬 드라마였다.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달려가고 그 과정에 주저앉고 무너지는 절망감이 더해질 드라마는 청춘을 지난 세대에겐 잊었던 꿈과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같은 세대에겐 한 번쯤 겪어봤을 혹은 겪어갈 공감대를 형성할 만했다. 조금 어린 학생들이 등장해 꿈을 향한 무한질주를 그렸던 ‘드림하이(KBS2)’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열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 ‘빈약한 설명’...잘 만든 60분짜리 뮤직비디오일 뿐=드라마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시청자를 60분 내내 브라운관 앞으로 모이게 해놓고는 불친절한 상황들을 이어간다.

아무런 설명이 이어지고 있지 않음에도 드라마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시청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상대방을 향한 마음에 공감을 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개연성 부족이다.

까칠왕자 이신(정용화)이 무용과 교수 정윤수(소이현)에 대한 해바라기는 이제 ‘짝사랑’을 넘어 ‘스토커 수준’이라 불리고 있다. 현재 이신의 마음은 열 살 이상 차이나는 여자에게 단지 ‘어린애’ 취급을 받은 것에 대한 철없는 투정에 불과한데 누군가에게 이것은 사랑이라 한다.

그런 이신을 바라보는 이규원(박신혜)의 마음 역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호하다. ‘왜들 그렇게 미치도록 빠져드는지’ 모르겠는 이신에 대한 규원의 마음이 그렇게 돼버렸다. 노예생활(가야금 대 밴드의 배틀에서 진 결과)을 하다보니 마음이 움직였고,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 마음이 커져갔고, 짝사랑에 차이고 아파하는 신이를 막무가내로 따라다니다 자기일도 잊었다. 과정에 대한 설명없이 감정의 결과만을 나열한 극강의 방송분이 바로 14일 6회분, 일명 ‘빗속의 데이트’신이었다.

그 와중에 헤어졌던 옛 연인은 모교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며 사각관계의 막이 올랐으나 설익은 청춘들의 뒤엉킨 사랑이야기는 수긍은 커녕 짜증만 유발하는 두통에 불과했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이렇다 할 전개없이 같은 상황 안에서 맴돌고 마는 ‘사라진 꿈’을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지루했다.

단 하나 스치듯 인상적인 것은 잘 찍힌 그림이다. 뽀얗게 터치된 카메라 안으로 적절하게 흐르는 OST, 때문에 드라마는 ‘잘 다듬어진 60분짜리 뮤직비디오’라는 반응이다. 조각조각 쪼개진 스토리의 흔적들이 두서없이 나열된 드라마, 이것은 드라마이기 보다는 뮤직비디오에 가까웠다. 

▶ ‘호감형 캐릭터’의 실종...“정을 둘 인물이 없다”=결국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의 설정이다. 통통 튀는 재기발랄함을 가진 인물들의 삶이 만나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넌 내게 반했어’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스토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드라마 속 캐릭터의 설정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큼 매력적인 인물들이 아니었다.

먼저 이신이다. 시크한 남자가 대세였다. 대세를 따르고자 하니 오만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자긴 안의 세상에 갇힌 남자, 하지만 세상은 이 남자를 갈구해 그 안의 세상을 더 두터운 유리벽으로 보호하게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예의범절’은 내다 팔았고, 질문을 하면 묵묵부답, 거만한 눈빛은 보너스였다. 어지간해선 웃으려 하지도, 누군가와 어울리려 하지도 않는다.

남자엔 이신이 있다면 여자엔 한희주(우리)가 있다. 재학중인 예술대학 이사장의 딸, 노력하는 연기천재. 그렇다면 ‘안하무인격일 만도 하다’고 치부하자니 아쉬움이 크다. 한희주는 늘 말이 앞서는 타입이다. 굳이 뱉어놓고 생각하지도 않는 특이한 인물, 이러한 한희주에 대해 이신은 말한다. “네가 왜 늘 혼자 있는지 알겠다”고.

까칠한 두 캐릭터 뒤에는 밝고 긍정적이고 사랑스럽기까지 한데 과도한 대사와 행동이 오글거리는 여주인공 이규원이 있다. 드라마는 이규원의 성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신의 틀을 깨고 나가 한 걸음씩 꿈을 향해 나아가며 그 안에 크고 작은 성장스토리를 그려가겠지만 가야금소녀인 규원이 새로운 음악과 세상을 접하며 겪게 되는 내적ㆍ외적(판소리 명창인 할아버지와의) 갈등, 꿈을 향한 도전은 극의 중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랑, 출처가 불분명한 외사랑이다. 그 외사랑이 이규원을 소위 ‘민폐캐릭터’로 만들어가고 있다.

무용과 교수 정윤수는 소이현의 미모가 빛나는 캐릭터임은 분명했지만 이는 곧 소이현의 한계로 비쳐지기도 한다. 소이현의 전작은 ‘글로리아(MBC)’. 이 드라마에서도 소이현은 부상으로 꿈을 점은 발레리나였다. 꺾여버린 날개는 삶의 열정마저 앗아갔고, 숨막히는 집안은 또다른 꿈을 꿀 수도 없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소이현은 목소리에 힘을 빼고 휙 불면 날아갈 듯 연기한다. 소이현이 최근 보여준 몇 개의 작품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때에 따라 처연하나 때에 따라 청승맞을 수도 있는 인물, 다시 찾아온 사랑에 미소지으면서도 어린 제자를 나몰라라 할 수 없어 미묘한 감정의 줄타기를 한다. 극중 정윤수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이는 곧 뒤엉킨 로맨스의 주역으로서 비호감 캐릭터가 되기 십상이다.

이 드라마는 현재 이렇게 요약되고 있다. ‘설명의 부재’, ‘민폐형 캐릭터의 집합’, ‘호감형 캐릭터의 실종’, ‘지루한 전개’ 등. 야심차게 포문을 열었으나 시청률은 어느새 5%(5.6%, 14일 6회 방송분ㆍAGB닐슨미디어리서치)대로 하락, 현재 ‘넌 내게 반했어’에는 그 어떤 부분에서도 만족할 만한 점수를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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