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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Y>김정일 하루에도 몇번씩 죽였다 살려내는 ‘대북소식통’의 정체
지난 5월 21일 ‘김정은의 단독 방중’을 보도한 A사는 자사의 특종보도가 오보였다고 인정했다. 이미 국내외 언론들은 물론, AP통신과 로이터 등 전 세계 언론들이 이를 인용 보도한 후였다. 이날 오전부터 쏟아진 국내외 기사들을 조롱하듯, 후계자 김정은이 아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날 밤 중국 무단장의 최고급 호텔에 홀연히 출현했고, 일본 교도통신은 김 위원장을 찍어 사진으로 보도했다. 1986년 11월 C사가 대서특필한 ‘김일성 사망설’ 이래 가장 화려한 북한 관련 오보였다.

▶김정일 하루에도 몇번씩 죽였다 살려내는 ‘대북 소식통’

세계적인 오보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내 소식통’이 있다. 국내 언론들이 흔히 인용하는 ‘대북 소식통’의 일종이다. A사는 “김정은이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북한 2인자로 인정받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 왔고, 이런 섣부른 인식이 중국 내 정보 소식통들로 하여금 김정은 단독 방중으로 예단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중국 내 소식통의 섣부른 인식이 오보 사태를 불러왔다는 자평이다.

‘대북 소식통’으로 인한 오보 행진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동안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 김 위원장의 신변은 남북대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북한 정보다. 지난 2~3년간 한국 언론들은 김 위원장을 하루에도 몇번씩 죽였다가 살려냈다. 6개월 만에 숨이 끊어질 것처럼 병세가 심각하다가도 다음날 아침이면 ‘양치질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그의 와병설을 보도하는 기사에 대해 일부 해외 언론은 ‘마치 병상을 보는 듯 생생하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현장 시찰하는 사진이 나오면 우왕좌왕 ‘김정일 건강회복’을 타전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곤 했다.

국내 언론이 매일 쏟아내는 북한 기사의 상당수는 정체 모를 ‘대북 소식통’에 의존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종종 ‘현지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 ‘정부 고위 관계자’ 등으로 무궁무진 변신해 북한 정보를 양산해낸다.

대북 소식통의 실체는 보통 탈북자와 통일부 공무원, 북한학과 및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북 사업인 등을 총칭한다. 희미하게 나마 북한과 연관을 맺고 있으면 일단 ‘대북 소식통’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국내 언론들은 실명 대신 대북 소식통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로 크게 4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북한 내 정보를 누설한 탈북자 및 북한 주민이 신변 위협을 받을 수 있고 ▷대북 기업인들의 북한 관계와 이미지 등을 보호하기 위해 ▷ 정확하지 않은 정보이거나 미확정 단계의 결정인 경우 ▷북한 내 보도라는 사안의 민감성 등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경우 대북 소식통이라는 불분명한 취재원조차 언급하지 않고 ‘알려졌다’ ‘전해졌다’는 알쏭달쏭한 수동태 표현을 사용, 취재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기도 한다.

▶북한 전문 매체ㆍ전문 브로커까지 등장

최근에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는 북한 전문 매체도 등장했다. 열린북한방송, 데일리NK, 자유북한방송 등은 북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매체들의 순기능도 뚜렷하다. 과거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의존하던 북한 정보는 대북 소식통에 의해 더 빠르고 정확해졌다. 지난해 북한이 단행한 화폐개혁은 데일리NK가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탈북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이 매체가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통화 내용을 확보하면서 만든 특종이다.

이들 북한 전문 매체는 ‘스트링거(비상근 통신원)’와 상근 기자들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다. 이들은 북한 내 들어가 있는 중국 휴대전화를 통해 북한 내부 취재원들을 접선한다. 또 중국으로 내부 취재원을 불러내 정보를 입수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북중 국경을 오가며 내부 정보를 팔아넘기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북한 전문 매체들이 특종만큼 다수의 오보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취재원들이 돈을 받고 정보를 팔면서 사실을 과장하거나 날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한에 터를 잡고 있는 북한 전문 매체들이 이를 깐깐하게 검증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북한 내 마약과 성폭력, 총살 등 선정적인 보도로 또 다른 황색저널리즘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 최고 북한통으로 꼽히는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가 북한 현실을 호도한다”고 꼬집은 바 있다.

▶‘북한은 소송을 걸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대북 소식통’이 전하는 정보들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 이른바 ‘북한은 소송을 걸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한 언론사들의 확고한 믿음이 있다. 추후 오보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가 또 다른 매체 보도를 통해 확인되지 않는 한 ‘일단 쓰고 보자’는 무책임한 보도행태를 걸러낼 방도는 없다.

특히 북한 내 권력 갈등에 대한 상상의 소설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양산돼 왔다. 2003년 5월 A사가 보도한 길재경 노동당 서기실 부부장의 망명이 대표적이다. 보도 하루 만에 길재경과 함께 망명했다고 보도된 한명철 조광무역공사 부사장이 마카오에서 “길 부부장은 몇 해 전 사망했으며 나는 정상 근무 중”이라고 주장했다. J사는 이틀 뒤 애국열사릉에 묻힌 길재경 묘비사진을 보도했다.

지난해 3월에는 북한 화폐개혁을 주도했다가 경제적 혼란의 책임을 물어 해임된 것으로 알려진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총살설이 남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여러 매체가 ‘복수의 북한 소식통’을 앞세워 총살설을 앞다퉈 보도했지만 곧 박남기는 여전히 건재하며 김정일의 개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어떤 매체도 ‘정정보도 신청’이나 ‘명예훼손’으로 골머리를 썩지 않았다.

이밖에도 북한 군인들의 집단 반란설, 마약 남발설, 식인종설 등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훗날 근거없는 소문으로 드러나거나, 일부는 여전히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설’로만 남아 있다.

‘대북 소식통’의 위험성은 정체 모를 정보가 곧 그릇된 대북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통일교육원장은 “가장 정확한 북한 정보가 가장 현명한 대북정책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아는 사람에게 들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카더라’ 통신은 잘못된 대북 진단을 낳고 어리석은 처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조 원장은 걱정했다.

<김윤희 기자 @outofmap> 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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