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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심에 젖은 붉은 남도의 서정
전라남도 강진은 ‘남도 답사 1번지’로 불린다. 산과 바다가 간직한 천혜의 풍광이 빛을 발하는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이자 하멜 표류기와 김영랑의 시들이 탄생한 땅이 여기다. 하멜의 자취를 따라 역사를 훑고, 영랑 생가에서 시심(詩心)을 찾은 뒤, 마량항 노을을 배경으로 사색에 잠길 만한 이곳은 남도의 서정과 풍광을 동시에 품은 곳이다.


▶하멜의 족적 따라 역사를 거슬러 가다=병영면에 위치한 전라병영성을 먼저 들렀다. 병영은 조선시대의 지방군사 조직인데 특히 이곳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서남부 지역의 군사 본부 역할을 했던 중요한 터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축조했는데 여전히 성벽 기초 부분이 잘 보존돼 있다. 이곳에서 제주의 군사까지 관할했다. 효종 7년(1656년)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ㆍ1630 ~ 1692)이 표류 끝에 제주에 닿아 그곳에 10개월간 체류하다 바로 이곳, 전라병영성에서 7년간 억류 생활을 했다. 그 기간 중에 쓴 ‘하멜 표류기’는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병영성 앞에 내리면 새로 지은 진남루(鎭南樓)가 먼저 맞는다. 나머지 성벽은 많이 남아 있지만 넓은 터가 옛 규모를 짐작케 한다. 온전히 남아 있을 때는 성곽의 총길이가 1060m,높이 4.87m,면적 9만3139㎡에 달했다. 이곳은 옛 모습을 찾기 위한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병영성 길 건너편에는 현대식 건축을 접목한 으리으리한 기와 건물이 특색 있게 보이는데 이곳은 뜻밖에도 병영면사무소다. 병영소 내에 실재했던 건물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멜의 족적을 헤아리려면 근처의 하멜기념관에 들르면 된다. 하멜은 동인도주식회사의 직원으로서 네덜란드를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 소재 무역회사로 물품을 싣고 오다 제주 근해에서 풍랑을 만났다. 이 사건은 하멜의 인생과 한국사에 일대사건이 된다. 하멜은 한국을 탈출해 본국으로 돌아간 뒤 회사에서 도망자로 낙인이 찍혀 임금조차 못 받게 됐다. 단순한 도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선에서 작성했던 비망록들을 모아 ‘사내 제출용 보고서’로 만들었던 것이 바로 하멜표류기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하멜표류기의 복제본이 관람객들을 먼저 맞는다. 강진군은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네덜란드의 문화와 역사를 이곳 하멜기념관에 일부 펼쳐놨다. 당시 네덜란드에서의 청화백자 유행, 미술거장들의 출현 등 시대상을 조망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네덜란드 나막신들도 전시돼 있는데 하멜 표류 이후 우리나라 나막신에도 앞코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멜과 일행은 부역에 동원되다 나중에는 대감집에서 서양의 춤과 노래를 뽐내는 광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영랑이 태어난 곳…뜰 안에는 여전히 시가 고여있다=다음 행선지는 시(詩)의 고향으로 잡았다. 강진읍 남성리에 위치한 김영랑 생가. 문인의 생가 가운데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랑은 1903년에 태어나 1948년 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여기 살았다. 생가에 들어서기 전에 커다란 바위로 된 시비를 먼저 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로 시작하는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새겨 있다. 시비 왼편으로는 모란이 피어 서정을 더한다. 집터 안으로 발을 들이면 복원된 본채와 사랑채가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생생히 서 있다. 울타리 안 여기저기서 사연 담긴 시비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본채 앞쪽 장독대에는 ‘오매 단풍 들것네’ 시비가 숨어 있다. 이곳 장독대와 감나무, 거기 서린 누이와의 정이 시각적으로 마음을 건드린다. 본채 오른편, 사랑채 앞쪽 터에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시비가 있다. 시비 뒤로는 동백나무 군락. 시의 소재가 뜰 안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셈이다.

사랑채 마루에는 모란 그림이 걸렸다. 영랑은 애초 성악에 소질이 많았다고. 특히 목청이 매우 커서 이 사랑채에서 노래를 부르면 들에 나가 있는 아낙들이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성악에의 재능이 그의 시에 음악적인 운율을 드리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랑은 이곳 사랑채로 임방울, 이화중선 등 예인들을 불러들여 음악을 즐겼다고.


▶마량항 노을은 남도의 붉은 서정으로 항구를 적시고=강진 해안도로를 타고 미항인 마량항으로 향한다. 이곳 해안도로는 왜란 때 의병들이 왜구를 속이기 위해 해안선을 둘러 허수아비를 세운 곳으로도 유명한데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마량항은 마량(馬良)이란 지명에서 엿볼 수 있듯 예로부터 제주에서 훈련시킨 말을 육지에 내리던 곳이다. 여기 닿은 말은 일정 기간 육지 적응 훈련을 받고 서울로 이송됐다고.

이곳 마량항은 떠들썩한 곳은 아니다. 다만 횟집에서 회 한 접시에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고 특히 노을이 좋다. 작은 배들이 한가로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배경으로 노을 질 때 사진 한 컷 찍을만하다.

강진만과 작은 섬 가우도를 잇는 출렁다리는 이곳의 새 명물로 자리잡을 준비를 마쳤다. 가우도는 14가구 30여명이 살며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거북이 모양의 작은 섬이다. 말을 훈련시키던 터가 남은 이곳에는 앞으로 강진의 명물인 청자 타워도 세워질 계획이다. 403m의 출렁다리는 이 섬과 백운면 저두 마을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연결한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인도교다. 다리 가운데서 북쪽으로 대나무섬 죽도를 배경으로 서면 포즈가 나온다.

강진=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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