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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저커버그’, 정세주 워크스마트랩 대표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못 했다. 영어는 한 마디 내뱉기도 어려웠다. 돈도 몇 푼 없었다. 스물다섯 나이에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왔다. 청년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하나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다. 그가 만든 앱은 안드로이드 마켓이 문을 연 2007년 이래로 건강 및 운동 분야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의 방송도 앞다투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구글, 아마존 등 공룡 IT 기업들을 키워낸 클라이너퍼킨스(KPCP)로부터 투자까지 받았다.

이 정도면 애플 신화의 주역 스티브 잡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공 스토리가 아닐까.

드라마 같은 성공담의 주인공은 운동 관리 앱 ‘카디오 트레이너’로 안드로이드 마켓을 휩쓴 정세주(31) 워크스마트랩 대표. 정 대표가 어떻게 앱 두세 개로 유명 투자사들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고, ‘IT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한국 IT 업계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지난 6일 바다 건너 미국 뉴욕에 있는 그와 인터넷 전화 앱인 ‘스카이프(skype)’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졸업장 포기하고 미국으로=정세주 대표는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선 한국 땅에서 큰 미련 없이 대학 졸업장을 포기했다.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에 다녔는데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 아니, 공부 자체가 재미없다기보다 동기 부여가 안 됐다. 결국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업에 눈을 돌렸다. 해외 희귀 음반을 파는 사업을 했는데 놀랄 만큼 잘 됐다.

‘소리바다’ 등 음원 서비스가 나오면서 사업은 예전같지 않았다. 한국에서 여러 한계에 부딪히자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정 대표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미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무작정 택시에 올라 가장 싼 호텔로 가달라고 했다. 도착한 곳은 옆방의 소음(?)이 적나라하게 들리는 러브모텔. 택시 기사는 “맨해튼에서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택시 기사도 그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웠다.

정 대표는 청소년 시기에 진로를 고민할 때 안철수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남을 통해서 자기를 확인하려고 하면 대중의 트렌드라는 것에 항상 뒤처진다고 느끼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치에 인생을 건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가 미국으로 훌쩍 떠난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는 듯했다.


▶“방 한 칸에서 남자 4명이 먹고 자고 일했죠”=어렵게 정착한 뉴욕 맨해튼에서 구글의 개발자였던 아텀 페타코브를 만난 것은 정 대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구글의 개발자라고 하면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했을 법도 한데,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그에게 아텀은 친절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 놀았다. 그러다 워크스마트랩의 공동 창업자로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사업 파트너인 아텀과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정 대표는 한 마디로 답했다. “대박이죠.”

아텀을 통해 정 대표의 사람이 된 이들이 로봇 경진대회 1위에 빛나는 마크와 캐틀이다. 이런 능력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을 끌고 다닌다”는 신념으로 사람을 믿은 덕분이다. 의기투합한 네 남자는 할렘가의 좁은 원룸에서 먹고, 자고, 일했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 팬티만 입고 돌아다녔다. 휠체어를 타는 마크를 위해 화장실 문을 뜯었더니 때때로 구린내가 진동했다.

“한국에서는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기 바쁘죠. 한국 기업들은 돈 주고도 못 살 그런 사람을 버리고 또 신입을 들여옵니다.” 정세주 대표는 IT강국 한국에서 개발자들이 단순 기술자로 취급받는 현실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 대표가 미국에 와서 겪은 고생담을 얘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예상했던 고생이었기에 견딜만 했다. 오히려 그는 “앞으로는 또 어떤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구글ㆍ아마존 키운 최고 투자사에 ‘찜’ 당하다=워크스마트랩의 창업 아이디어는 아텀이 처음 생각했다. 헬스클럽에 갔더니 운동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헬스 기구를 직접 만들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러다 운동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떠올렸다. 6~8개월가량 조사에 몰두했다. 소셜, 검색 등의 분야를 피하다보니 스마트폰 서비스에 생각이 미쳤다.

대강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투자사를 찾아다녔다. 정 대표에게 투자한 클라이너퍼킨스, 퀄컴 등의 투자사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그의 ‘팀’이었다.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심사한 다음에 마음에 들면 그제야 뭘 개발할 거냐고 물었다. 투자가 결정되면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직접 붙여주기도 했다. 한배를 탄 투자사도 같이 제품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워크스마트랩은 모바일 건강 관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카디오 트레이너’는 2009년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안드로이드 앱으로 꼽혔고, 2010년 뉴욕타임스는 워크스마트랩을 최고의 건강관리 앱을 만드는 권위자로 인정했다. 올해는 까다로운 투자사로 소문난 클라이너퍼킨스가 모바일 분야 최초로 워크스마트랩에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IT 강국’이라며? 한국에는 왜 ‘스티브 잡스’ 없나=창업 당시 한국 개발자들을 데려오고 싶었다. 운좋게 서울의 명문대 석박사 출신들이 모여있는 동아리와 인연이 닿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기업 취직이 보장돼 있었고 당장 결혼 준비도 해야 했다. 창업은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겠는데 현실적으로 설득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며 슬금슬금 발을 뺐다.

‘IT 강국 코리아’, 지겹게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IT 관련 학과 정원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노동 강도는 높지만 합당한 대우는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할 말이 많은 듯 정 대표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스티브 잡스라고 실수하지 않을까요? 한방에 대박나는 제품은 드물죠. 다만 발견된 문제를 얼마나 개선하려고 노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기 바쁘죠. 하지만 실패를 통해 그 사람이 배운 건 얼마나 많겠어요? 한국 기업들은 돈 주고도 못 살 그런 사람을 버리고 또 신입을 들여옵니다. 단기적인 업적에 급급해 ‘땜빵질’만 하다보니 꿈만 꾸다 마는 거죠.”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강력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보유한 구글이 직접 휴대전화까지 만든다면 ‘제2의 애플’ 탄생도 머지않은 까닭이다.

정 대표는 한국이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 개발자가 ‘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개발자를 기업의 부속품이나 단순 기술자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젝트 매니저나 개발자 등 현장에서 제품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야 또 다른 스티브 잡스도 나올 수 있다고 정 대표는 조언했다.

▶“무조건 나 자신을 후원하고 응원하길”=2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 대표는 살아있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가 있다면 그 능력을 살려서 의미있게 쓰고 싶다고. 정 대표는 그것이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추진하는 능력은 있다고 생각해요. 동기 부여하고 응원하는 데도 소질이 있죠. 커리어가 쌓이면 이런 능력을 살려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글로벌 마켓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함께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이 원하는 것에 맞춰가는 삶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잖아요.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투자한다면 힘들었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게 한결 쉽겠죠.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방법론이라면 저는 직관을 따르는 편입니다. 직관을 따라 결정했다면 그 다음엔 무조건적으로 나 자신을 후원하고 응원하는 거죠.”

이혜미 기자/ ham@heraldcorp.com



“좋은 사람들에게서…좋은 아이템이 나온다”

정세주 워크스마트랩 대표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인 짐 콜린스의 인재론을 좋아한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버스에 무조건 태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과감하게 내리게 한다는 것.

워크스마트랩도 좋은 사람들이 뭉치면 좋은 아이템도 찾아진다는 신념을 토대로 한발 한발 성장했다. 아이디어가 틀린 것으로 판명나더라도 서로 믿음을 잃지 말고 틀린 부분을 함께 고쳐나가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워크스마트랩은 직원 수 16명에 무려 7개국의 인재들이 모여있다. 이 중에는 장애인도 있고 게이도 있다. 조직 문화에 대해 정 대표는 “다양한 문화의 장단점을 배우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외국에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어떻게 항상 리더가 맞을 수 있겠나.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취합하는 사람이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곳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일일히 체크하지도, “너 이거 했어?”라고 업무 진행을 독촉하지도 않는다. 직원들이 회사를 진정 ‘우리 회사’로 느낄 수 있도록 매달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투자할 수 있게 했다. 공부하고 싶어하는 직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침 워크스마트랩은 따끈따끈한 ‘신상’ 앱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름하여 ‘눔(Noom) 다이어트 트레이너’. ‘카디오 트레이너’의 운동량을 측정하는 기술과 ‘칼로리픽’의 식단 관리 기술을 결합, 다이어트에 필요한 모든 트레이너를 제공한다. 현재 시험 배포 중인데 반응이 좋다며 정 대표는 즐거워했다. 정식 버전은 9월 말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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