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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날…
쪽빛 연못에 비친 전남 장성‘백양사’아기 단풍에 취하고…화순땅 밟으니 올곧은 선비 기상 빼닮은‘4대 적벽’이 날 반기네
1400년 고찰 새색시 같은 백양사

뛰어난 풍광에 애국가 영상 삽입

화순 적벽은 조선 10경 중 하나

푸른 비단에 산수화 그려 놓은듯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달빛이 배회하니 가을 물이 맑구나…/붓을 잡고 생각하니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고려 충절 정몽주 선생이 백양사(白羊寺)의 절경에 탄식하며 썼다는 ‘쌍계루(雙溪樓)’ 한 구절이다.

무상한 세월에 모든 게 간데없지만 백양사의 빼어난 미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쪽빛 연못 물에 비친 천년 고찰의 그림자가 마냥 수줍고 멋스럽다.

장성군 백양사가 새색시의 자태라면 이웃한 화순군 4대적벽은 그 웅장함이 올곧은 선비의 기상을 빼닮았다. 조선의 개혁가 조광조가 사약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절경에 인생무상을 슬퍼했다던 한이 서린 곳이다. 풍상에 깎인 기암절벽은 굽이치며 동복천을 휘감는다. 지난 주말 호남의 두 절경이 자리한 전남 장성과 화순에 다녀왔다.

▶조선 8대 비경 천년고찰 백양사=백암산국립공원 입구에서 단풍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니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풍광이 빼어나 방송사 애국가 영상의 한 장면으로 삽입된 백양사다.

백양사 풍광은 어느 한 철 안 좋을 때가 없지만 빛깔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성 아기단풍이 제 빛깔을 내는 가을이 천하 절경 중의 절경이다.

오색 아기단풍에 물든 백암산이 백양사와 쌍계루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다.

절 앞의 맑디맑은 연못은 단풍이 물 위까지 가지를 길게 드리웠다. 선녀가 곱게 머리를 감다가 나그네를 보고 놀란 듯 붉디붉다.


1400여년 전 백제 무왕 33년 때 세워진 백양사는 모진 세월에 인근 계곡에서 절터가 옮겨왔고 이름도 수없이 바뀌었다. 첫 이름은 백암사(白巖寺). 여기엔 전설이 하나 전해온다. 한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자신은 수행과 덕을 쌓고 천상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잠에서 깬 스님은 절 뒷산에서 흰 양의 주검을 발견하고 절 이름을 바꿨다.

가을 햇볕 가득한 절 뜰에는 낙엽 진 홍매화 한 그루가 쓸쓸하다. 홍수에 살아남아 옮겨 심었다는 350년 된 천연기념물 486호 고불매(古佛梅)다. 선암산 선암매, 전남대 대명매, 담양의 계당매, 소록도 수양매와 함께 호남 5매(五梅)로 불린다. 꽃 빛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한 토종 매화다.

▶역사가 묻어나는 약사암ㆍ천진암ㆍ남창계곡=눈과 마음이 아기단풍의 맛에 취하고 고찰의 멋에 심취해 잠시 혼이 나갔다면,가을 찬바람에 정신을 차린 발걸음은 백양사 부속 암자 약사암과 영천굴로 향한다.

약사암에 두 명의 스님이 살았는데 영천굴에 가면 늘 바위틈에서 요술처럼 두 명분의 쌀이 나왔다. 욕심이 난 스님 하나가 바위틈을 파내자 쌀 대신 피가 나왔다는 얘기다. 피가 났다는 자리에는 지금은 달고 깊은 맛의 약수가 나온다.

약사암을 내려와 20분쯤 달렸을까,좁은 길에 들어서니 비구니 암자 천진암이다. 돌계단부터 입구까지 담벼락처럼 펼쳐진 대나무숲길을 지나야 한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야 비로소 아기자기한 모습을 드러낸다. 뜰엔 탱자나무와 감나무에 노랗고 파란 열매가 산사의 고즈넉한 멋을 더해준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위)는 어느 한 철 안 좋을 때가 없지만 빛깔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성 아기단풍이 제 빛깔을 내는 가을이 천하 절경 중의 절경이다. 전남 화순군에 있는 4대 적벽(아래)은 동복천에서 창랑천까지 7㎞ 물길을 따라 장엄한 풍경을 자랑한다.

인근의 남창 계곡은 한반도 식물의 남북 경계가 나뉘는 곳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하게 서 있는 비자나무, 갈참나무, 삼나무, 편백나무와 더불어 고로쇠나무 군락도 남창계곡의 명물이다.

▶조광조의 넋이 서린 화순 적벽(赤壁)=장성 여행을 마치고 화순 땅을 밟으니 화순 적벽이 장엄한 기상을 드러냈다.

동복천을 따라 창랑천까지 7㎞ 물길에 물염, 창랑, 노루목(장항), 이서 등 4대 적벽이 펼쳐진다. 적벽은 중국 황저우(黃州)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화순 적벽은 조선 10경 중 하나였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바위 빛이 서로 교차하고 투영돼 마치 푸른 비단 폭에 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 멋스럽다.

적벽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조광조(1482~1519)가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직전 25일간 배를 타고 다니며 절경에 한을 달랬다고 한다. 화순엔 아직도 그가 사약을 받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적벽 중 최고는 동복천 한가운데 서로 마주보는 노루목적벽과 이서적벽이다. 화순 적벽이라고 하면 이 두 적벽을 말한다. 경치는 사진이나 말로는 표현 못할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현재는 동복천이 광주광역시의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 아쉽게도 40년째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모시는 수몰지 실향민에게만 문이 열리는 잃어버린 호남의 절경이 됐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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