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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원칼럼> 보수의 참뜻
지킨다는 뜻의 ‘보수’

쓰이는 상황따라 대상 결정

자신이 따르는 이념 버리면

한나라당 정체성 잃는것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강령에서 ‘보수’란 말을 빼는 것을 검토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이념에 관한 일이므로, 이것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다. ‘인적 쇄신’이라는 구호 아래 다가오는 총선거에서 새 얼굴들을 내세우겠다는 얘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안타깝게도, 이 일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보수’라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듯하다.

보수(保守)는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수라는 말은 그렇게 지키는 대상이 무엇인지 가리키지 않는다. 그 말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보수의 대상이 결정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수의 대상은 이념과 체제다. 우리 사회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구성 원리로 삼은 사회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킨다. 1980년대 이전의 러시아와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선 전체주의 이념과 명령 경제를 바탕으로 삼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킨 사람들이 보수라 불렸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보수라 부르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따르지 않고 다른 것들로 대치하려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진보’라 부르는 데서 나온다.

한 사회의 이념과 체제를 다른 것들로 대치하려는 태도는, 즉 보수의 대척적 존재는, 진보라고 불릴 수 없다. 그것은 ‘대체’나 ‘변혁’이라 불려야 한다. 진보의 역(逆)은 퇴보다. 게다가 보수와 진보를 대립시키는 관행엔 숨겨진 편향이 있다.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바뀌며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보수라는 말보다는 진보라는 말이 훨씬 좋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편향은 보수의 매력을 크게 줄였다.

이념을 논의할 때, 우리는 모든 이념들을 하나의 스펙트럼에 배열하고 양쪽이 대체로 대칭적이라 여긴다. 학문적 논의에선 이런 관행이 정당화된다. 그러나 특정 사회의 맥락에서 이념을 다루게 되면, 이런 대칭은 무너진다. 어떤 사회든 특정 이념을 자신의 구성 원리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 원리가 된 이념은 정설(orthodoxy)의 지위를 차지하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설(heterodoxy)이 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한다. 당연히,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중립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설이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설들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한나라당의 강령에서 ‘보수’라는 말을 빼려는 시도는 잘못된 일이다. 보수라는 말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설이라는 근본적 사실이 들어 있다. 그래서 보수라는 말은 지금 이곳에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구체적 이념들과 체제들의 단순한 합산을 넘어선다. 설령 강령에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같은 이념이나 체제를 따른다고 명시하더라도, 보수라는 말을 버리면, 한나라당은 자신이 따르는 이념과 체제가 대한민국의 정설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외면하는 셈이 된다.

한나라당이 무척 어려운 처지에 놓였고 그래서 비상적 대책들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보수라는 말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도 있다. 그래도 보수를 버릴 수는 없다.그런 선택은 한나라당이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보수는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져야 할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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