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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야 얼마나 아팠니?…정말 미안해…”
학교폭력과의 전쟁 4개월 그후…
입장 바꾼 심리극 경험후…“장난이 이렇게 심각할줄…”
“보듬어 주지 못해 미안해”…참가부모도 눈시울

초등학교 5학년인 최상혁(가명ㆍ12) 군이 어머니 박정숙(가명ㆍ51ㆍ여) 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의자에 앉았다. 최 군은 화가 나면 같은 학교 친구들을 자주 때렸다고 했다.

“어떻게 때렸어?” 김영한(45) 별자리사회심리극연구소장이 물었다.

“발로 밟았어요.” 최 군이 발을 구르는 시늉을 했다.

“밟을 때 기분이 어땠어?” “약간 미안했어요.” “미안했어?” “네.” “화가 나면 못 참는구나.” 최 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 왜 울어?” 김 소장이 물었다. “엄마가 우니까요.” 최 군이 말했다. 어머니 박 씨는 아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신문로 경찰박물관 6층에서는 최 군과 중학생 7명 등 학교폭력 가해 학생 8명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경찰박물관이 진행하고 있는 학교폭력예방교실 심리극 ‘내 마음이 들리니?’에 참가한 것. 객석에는 의정부경찰서 어머니폴리스 20명이 함께했다.

모자(母子)의 대화는 계속됐다.

엄마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를 닮지 마”라고 했다.

엄마는 눈물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표정을 추슬렸다. “엄마가 잘하려고 했는데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 너한테 사랑이 작았다면 더 사랑해줄게. 더 안아 달라면 안아줄게. 네가 이 상황을 잘 넘겼으면 좋겠어. 엄마가 항상 말했잖아. 화가 나도 한 번만 더 생각하라고. 엄마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엄마가 너 항상 믿는다고 했지?” 최 군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바라보던 어머니폴리스들은 객석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무대에서 오간 짧은 대화가 남 일 같지 않았다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들과 비슷한 상황인 김진주(가명ㆍ39ㆍ여) 씨도 “마음이 허한 아이들이 엇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부모로서 잘 챙겨주지 못해 죄책감이 많이 든다”고 했다.

심리극이 마무리된 후 최 군은 “엄마 속을 썩여서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친구들 때리는 게 나쁜 줄 몰랐어요. 그런데 오늘 알게 됐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최 군은 또 “어른이 되면 사람들이 나쁜 폭력을 안 쓰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어요”라고 밝혔다.

최 군의 어머니 박 씨는 “늦게 낳은 외아들이라 더 애틋했다”며 “아버지가 폭력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안 좋은 것만 보고 배운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고 했다. 엄마는 아들을 꼭 껴안았다.

중학생 형들의 심리극도 진행됐다. 서울의 모 중학교에 다니는 4명은 개학 직후인 지난 3월 초부터 한 친구를 괴롭혔다.

4명의 입장에선 그냥 ‘장난’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신고로 이 4명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중 한 명인 박경석(가명ㆍ16) 군이 무대에 올랐다.

“어떻게 괴롭혔니?” 김 소장이 물었다. “젖꼭지도 꼬집고 볼도 당기고 빵도 사오라고 시키고. 툭툭 치고.” “장난이었지?” “네.” “경찰한테 신고 당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황당했어요. 장난이었는데….”

김 소장이 말했다. “폭력의 기준은 내 기준이 아니야. 나는 장난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으면 폭력이 되는 거야. 역할을 바꿔보자. 경석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 돼 봐.”

김 소장은 박 군으로 빙의(憑依)를 시도했다. 박 군이 친구에게 그랬듯, 김 소장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경석 군의 가슴 부위를 꼬집으며 킥킥거렸다. 또 살이 쪘다고 놀렸다. 볼을 꼬집었고 매점에서 빵을 사오라고 윽박질렀다. 머리를 툭툭 치면서 놀렸다. ‘저러다 박 군이 무대에서 내려 가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될 때쯤 괴롭힘을 멈췄다.

“기분이 어땠어?” “짜증나요….” 쑥스럽게 웃으며 박 군이 말했다. “실제 상황도 아니고 겨우 1분을 당했는데도 기분이 나쁘잖아. 그럼 상대방은 어떻겠어? 1주일 내내, 1년 내내 당한 애들은…. 나는 장난이지만 상대방은 기분이 나쁠 수가 있어.”

무대에 오른 친구를 보며 킥킥거리던 나머지 3명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김 소장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심리극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부모님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이미화(46) 경찰박물관 행정관은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프로그램은 현재 6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이지웅 기자>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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