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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 공인중개사 하루, "백수가 따로 없어"
[헤럴드경제=이자영 기자]20여개 공인중개업소가 오밀조밀 이마를 맞댄 반포동의 한 상가. 서초구의 랜드마크 ‘반포자이’를 배후수요로 둔 이곳의 점포들은 낡고 후락해가는 구시가지를 연상시켰다. 지난 2009년 반포자이의 입주와 함께 강남 부자들로 붐볐던 이곳 공인중개업소들의 요즘은 조용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출입하는 사람도 전화벨 소리도 없다. 텅빈 상가 복도는 하루종일 침묵만 지킨다.

지난 31일 찾은 반포동 A부동산 대표 김주원(가명)씨는 스스로를 한가로운 시골 촌부에 비유하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잠원동에서 25년, 반포동에서 3년째 공인중개업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웠던 적은 없다. 3년 전 반포자이 입주 당시에는 하루에 매매문의 전화만 5~6통이 왔다. 계약서도 매일 2~3개씩 써냈다. 손님들에게 집을 보여주려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아파트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웃한 업소들과 ‘한달 계약서 50개 성사’를 걸고 내기도 자주 벌였다. 손님들과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업체 관계자들로 점포가 북적거렸던 ‘화려한 시절’이었다.

기자가 찾은 이날 김씨가 받은 전화는 오전, 오후 각각 2, 3통씩 총 5통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전부 ‘허수’다. 오전 9시에 가게를 열자 잠원동 손님에게 온 ‘주인을 설득해서 전세 재계약 금액을 깎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곧이어 ‘집 내놓은지 3년인데 왜 안 팔아주냐’는 단골고객의 푸념성 전화가 왔다. 잠원동 40평대 아파트를 3년 전보다 2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내놨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김씨는 “금액을 더 낮춰도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미안해했다. 이 전화 두 통화를 응대한 것이 김씨가 오전동안 한 일의 전부였다. 



매수 문의 전화를 받은 것은 2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반포자이 80평대에 월세에서 면적을 줄여 매매로 갈아탈까 고민하던 손님은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고 결정을 미루더니 최근에는 연락을 피하는 눈치다.

12시가 되자 김씨는 상가 지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그는 “경기가 안좋으니 도시락을 싸오는 업자들도 많아졌다”며 “동료들과 관련업체들이 모여 회식도 자주 했었는데 모두 옛날 일”이라고 씁쓸해했다.

오후에 처음 걸려온 전화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광고를 할 생각 없냐’는 광고 업체의 문의 전화였다. 마침 김씨의 최근 고민은 포털사이트 광고비를 포함한 점포 유지비다. N포털 사이트에 부동산 매물을 올리려면 1건당 11000원의 요금을 내야하지만 매매심리가 얼어붙어 광고 효과도 없다. 경기가 좋을 땐 하루 1개 이상 매물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일주일에 1~2개로 확 줄였다. 그나마 전월세 매물만 올리고, 찾는 사람이 없는 매매 물건은 아예 게재할 생각도 않는다. 그는 광고업체에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머지 전화 두 통은 서초동의 공인중개업소에서 ‘전세 물건이 있냐’, ‘물건을 보러가겠다’는 공동중개 관련 전화였다. 이날 김씨의 업소를 직접 찾은 손님은 심심할 때마다 들러서 담소를 나누는 반포자이 주민 한명이 전부였다. 손님에게 대접한 음료수와 사탕은 이삿짐센터에서 ‘일자리 소개를 부탁한다’며 주고 간 것들이다.

김씨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났다. 문의전화 몇 통을 받고, 일주일에 전월세 1~2건을 성사시키는 것이 전부다. 김씨는 “백수가 따로 없다”며 민망해했다. 같은 상가에서 공인중개업소를 하던 동료는 가게를 완전히 접고 분식가게로 업종을 바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할 일이 없어 퇴근 시간을 앞당길만도 한데 오히려 집에 가는 시간은 늦어졌다. 호황기에는 오후 6~7시에 문을 닫았는데 요즘은 8시 넘어서까지 가게에 있는 일도 많다. 김씨는 “하루종일 한 일이 없어 일찍 퇴근하려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혹시라도 손님 한 명이라도 찾아올까 싶어 늦게 가는 것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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