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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개점휴업…일부 분식점 전업도”
부동산 장기불황의 그늘…강남 공인중개업소는 지금
하루 걸려온 전화 불과 5통
시세 묻거나 푸념성 전화만

종일 빈 사무실…복도마저 썰렁
혹시나 퇴근시간 늦춰도 한숨뿐



1일 20여개 공인중개업소가 빼곡히 들어선 반포동의 한 상가. 서초구의 랜드마크 ‘반포자이’를 배후 수요로 둔 이곳 점포들은 ‘강남 부자’들로 북새통이던 2~3년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썰렁했다. 주택매매나 전세를 문의하는 소비자는 물론 주택상담을 위한 전화벨 소리도 없었다. 텅빈 상가 복도는 하루종일 침묵만 흘렀다.

반포상가에 위치한 A부동산의 김주원(가명) 사장은 대한민국 부촌으로 통하는 서울 강남 잠원동에서 25년, 반포동에서 3년 등 총 28년째 공인중개업소를 운영중인 베테랑 공인중개사다. 하지만 요즘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부동산 불황에 몸서리치고 있다. 김 사장은 3년 전 반포자이 입주 당시엔 매일 주택매매를 문의하는 전화가 5~6통씩 받았다. 매매 계약서도 하루평균 2~3개씩 쓸 정도로 잘나갔다. 소비자에게 집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에만 수십번씩 고층 아파트를 오르락 내리락했지만 힘든줄을 몰랐다. 몸이 10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이날 A부동산의 모습은 예전과 180도 달랐다. 김 사장이 하루종일 받은 상담전화는 오전 2통, 오후 3통 등 총 5통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시세를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오전 9시에 가게를 열자 잠원동 손님에게 온 ‘주인을 설득해서 전세 재계약 금액을 깎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잠시 뒤엔 ‘집 내놓은지 3년인데 왜 안 팔아주냐’는 단골고객의 푸념성 전화를 받아야했다.

잠원동 40평대 아파트를 3년 전보다 2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내놨지만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금액을 더 낮춰도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미안해했다. 서초동에 위치한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서 ‘전세 물건이 있냐’, ‘물건을 보러가겠다’는 공동중개 관련 전화도 있어지만 주택을 문의하는 전화는 더 이상 없었다. 김 사장이 매수 문의 전화를 받은 것은 2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전화 통화를 마친 김 사장은 벽시계가 12시 30분을 가르키자 상가 지하식당에서 한끼에 5000원가량하는 백반으로 뒤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밥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동료 중개사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동료들과 관련업체들이 모여 회식도 자주 했었는데 모두 옛날 일”이라 서둘러 식당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김 사장은 올들어 일주일에 전ㆍ월세 1~2건 성사가 전부다. 김 사장은 “사무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며 “백수가 따로 없다”고 푸념을 쏟아냈다. 그는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업종 변경 등 특단의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같은 상가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던 한 동료는 분식가게로 업종을 바꾼 상태다.

할 일이 없어 퇴근 시간을 앞당길만도 한데 오히려 집에 가는 시간은 늦어졌다. 호황기에는 오후 6~7시에 문을 닫았는데 요즘은 8시 넘어서까지 문을 닫지 않는다. 혹시나 늦은 시간에 주택을 찾는 소비자가 찾아올까하는 기대 심리 때문이다. 김 사장은 “하루종일 한 일이 없어 일찍 퇴근하려면 마음이 불편하다”며 “혹시라도 손님 한 명이라도 찾아올까 싶어 늦게 가는 것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으며 사무실을 닫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가를 빠져 나갔다.

이자영 기자/nointe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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