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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국에 작별 고하는 WHO연락사무소
세계보건기구(WHO) 한국연락사무소가 이달 말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1965년 서울에 주한대표부라는 간판을 내걸고 처음 활동을 시작한 지 47년 만에 완전 철수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의 보건환경과 건강상태가 월등히 향상됨으로써 더 이상 WHO가 주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제는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어엿이 원조를 주는 입장으로 격상된 한국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우리 국민들의 보건위생 상태는 너무도 열악했다. 집안에는 벼룩과 쥐가 들끓었으며, 아이들의 머리에서도 이나 서캐가 잡히는 게 보통이었다. 도시의 상하수도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병원균에 오염된지도 모르고 지하수를 펌프로 퍼올려 식수로 사용했다. 심지어 서울의 중심가 뒷골목에도 시궁창 구정물이 흥건히 고여 있기 일쑤였다. 그 결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철이면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WHO는 우리 국민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적잖은 기여를 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을 파견하고 방역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결핵과 한센병, 말라리아 퇴치에 앞장섰다. 우리 정부가 해마다 전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변검사를 하고 구충제를 나눠줌으로써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었던 것도 WHO의 지원 덕분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전 국민의 70~80%가 회충에 감염돼 있었으며, 따라서 회충으로 배앓이를 하는 경우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동네와 학교를 휩쓸던 전염병은 거의 사라졌으며, 보건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1970년대 말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건강보험도 지금은 전체 국민들에게 확대 적용되고 있다.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났고 청소년들의 발육상태가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양호해진 것이 그 결과다. WHO가 더 이상 주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보건의료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수두룩하다. 쪽방촌이나 노숙인 및 장애인 시설 가운데는 질병의 집단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경우가 적지 않다. 대도시에는 거리마다 병원이 경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반면 산간벽지에는 무의촌도 엄연히 존재한다. WHO의 철수 결정으로 세계적인 보건의료 선진국이 됐음을 증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더욱 국민 건강을 위해 내실을 다지는 보건행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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