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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분열’ 아니죠, ‘조현병’ 맞습니다
끊임 없이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조현병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조현병보다는 아직 ‘정신분열증’이란 예전 이름이 더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 정신질환은 마치 치료가 어렵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며 주변을 위협한다고 잘못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심한데, 특히 조현병은 과거 이름 탓에 괜한 오해를 받은 대표적인 질환이다. 존 내쉬가 질환을 극복하고 마침내 업적을 인정받아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현병은 꾸준히 관리하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편견의 시작, 잘못된 이름 = 정신분열이란 단어는 마치 정신이 신체와 분리됐거나 온전한 정신이나 자아가 뭔가 이상이 생겨 갈라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질환 영문명인 라틴어 ‘schizophrenia’를 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시대적 무지와 번역과정에서의 오해 때문이다.

조현병이 본격적으로 연구된 1900년대 초만해도 인간의 마음이 횡경막 근처에 있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조현병의 증상을 ‘분리됐다’는 뜻의 ‘schizo’와 ‘막’을 가리키는 ‘phrenia’를 합쳐 불렀다. 이것이 그대로 일본을 통해 전파되었고, 조현병은 의학적인 증상과는 전혀 상관 없는 부정적인 이름을 얻게 됐다.

조현병의 대표적 사례인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영화 속 존 내쉬는 거의 일평생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지만 꾸준한 치료로 마침내 질환을 극복해냈다. 이처럼 조현병은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한 질환이다.

이에 비해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으로,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이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질환을 신경전달물질 조절로 치료할 수 있다는 온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흔하디 흔한 조현병 = 조현병은 개인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며 환경적 자극이 정체성을 바꾼다는, 극히 드문 인격분열 질환인 ‘다중인격장애’와 전혀 다르다. 또 극악 범죄 발생 때 불거지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사이코패스’와도 다르다.

전세계적으로 조현병 평생유병율(개인이 평생 단 한 번이라도 걸릴 확률)은 1%에 이를 정도로,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낮은 0.4~0.7%로 추정되는데, 정신질환이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실제 유병율은 조금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은 15세에서 25세 사이에, 여성은 25~35세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의 3~10%는 40세 이후에도 발병하지만 10세 이전이나 60세 이후 발병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조현병은 양성과 음성증상으로 구분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성증상은 망상, 환각, 환청 등으로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 내적인 소리를 듣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읽고 조절해 자신을 해치려한다고 믿는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조현병이 공격성향을 나타낸다고 믿는 이유는 바로 이 양성증상 때문인데, 이는 급성기에 피해망상과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다. 일시적인 증상이므로 치료를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음성증상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능이 감소되는 것으로, 감정표현이 결여되거나 언어의 빈곤, 무감동, 무쾌락, 주의력 손상 등의 증상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조현병인 건 아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한달 중 상당기간 존재하고 장애 징후가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될 때야 조현병이라 진단될 수 있다.


▶꾸준한 관리만이 치료의 왕도 = 조현병은 주변의 편견 탓에 질환을 숨기게 되거나 환자 스스로 병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해 꾸준히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약 복용 순응도가 낮으면 증상이 재발되는 것은 물론 만성화돼 치료 성공률이 떨어진다. 또 재발을 거듭할 수록 인지기능 손상 및 음성증상이 악화돼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조현병 치료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급성기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뿐 아니라, 재발을 억제해 병이 진행되는 걸 차단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또 일상생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치료도 병행된다. 최근엔 입원하거나 매일 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기지속형 주사제가 개발돼 환자의 복약 실패에 따른 증상재발을 방지하고 있다.

이상익 충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에 무지했던 과거엔 비과학적인 시술방법이 만연했고 입원, 격리 중심의 치료로 환자의 삶을 파괴하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현대에는 항정신질환 약물의 발전으로 과학적 치료가 이뤄져 당뇨나 고혈압처럼 꾸준한 관리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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