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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든 자본주의’ 치유의 길을 엿보다
SBS다큐 ‘최후의 제국’ 특정지역 탐사 관행 탈피…히말라야 고산족 등 일류 생존의 비밀서 탐욕에 찌든 사회 대안 모색
SBS ‘최후의 제국’은 새로운 다큐멘터리물이다. 지상파의 다큐 대작들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감동찾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특별한 지역을 찾아나섰다. 아마존 강, 아프리카, 남극 등등…. MBC ‘눈물’ 시리즈, KBS ‘슈퍼피시’, SBS ‘최후의 툰드라’ ‘태평양’ 등은 그렇게 제작된 훌륭한 다큐물이었다.

하지만 4부작 ‘최후의 제국(The Last Capitalism)’은 특정 지역을 탐사하는 대작 다큐의 관행을 벗어던지고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 한 가지를 던진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난다. 경제전문가의 이론적인 의견을 듣는 게 아니라 인류 생존의 비밀 속에서 그 해법을 찾아보려는 새로운 시도다.

‘최후의 제국’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다큐가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병든 자본주의’ ‘고장 난 자본주의’라고 본다. 최적의 시스템으로 불렸던 자본주의가 왜 이렇게도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잃어버린 가치들을 찾아나간다. 그것은 공존, 책임감, 나눔이라는 가치였다. 그래서 병든 자본주의를 고쳐 ‘인간적인 자본주의(Humanistic Capitalism)’를 제창한다.

지난 18일 방송된 1부 ‘프롤로그-최후의 경고’ 편에서는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어린이 5명 중 1명이 하루 세 끼 가운데 한 끼 이상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미국의 상위 1%는 전체 부(富)의 42%를 가지고 있다. 돈과 부(富)만을 좇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경쟁이란 이름으로 약자의 고통에 얼마나 무감각해지고 있는지 ‘아이들의 환경’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야 함을 역설한다. 집이 없어 모텔이나 차에서 생활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의 화난 모습을 인터뷰했다. 이 아이의 엄마가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또 우리 아이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모습도 충격적이었다. 하루 3시간30분 출석하면 일주일에 20달러를 주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고등학교도 소개했다. 청소년범죄를 줄이고, 최소한 고교졸업장이라도 건네주려는 학교의 동기 부여책이긴 하나, 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나온다.

중국에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는 포기한 채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부잣집 ‘대리 수유모’로 들어가는 가난한 엄마들이 많다. 자신의 몸매관리를 위해 대리 수유모를 선택하는 부잣집 여성들은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한다.


그렇게 보면 ‘최후의 제국’이 왜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의 외진 작은 섬 아누타까지 갔는지를 알 수 있다. 1부 첫 장면은 제작진이 한 달간의 취재를 끝내고 떠나려고 하자 원주민들이 모두 모여 통곡을 해 제작진을 당황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펑펑 울며 난리가 난 듯한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뒤에야 이별의 슬픔을 통곡으로 달래는 그들의 뜨거운 인간애라는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누타는 좁은 섬에 300명의 주민이 살고 잦은 태풍으로 힘들지만 아이들이 굶지 않는다. 초기에는 서로 싸우고 질투하는 탐욕의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는 공존과 상생의 길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허파에 바람 들어간 듯(?) 웃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최후의 레저’라는 서핑 등 수상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왜 돈이 훨씬 더 많은 우리가 이들을 부러워하며 바라보고 있을까?

돈은 별로 없지만 머리에 꽃장식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산족 여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부 ‘슬픈 제국의 추장’에 등장하는 파푸아뉴기니의 부족공동체 지도자 ‘빅맨’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베푸는 것’이다. 그래야 존경과 권위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다. 정치ㆍ경제 선진국은 아니지만, 그들이 부족사회를 유지하는 방법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가치들이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 베풀어야 존경받는 리더, 리더와 더불어 한목소리를 내는 단합 등이다. 그러면서 라스베이거스 지하 배수구에 살고 있는 300여명의 모습과 화장실에서 애를 씻기는 부모,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홈리스족도 취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랑과 유대, 행복 같은 감정이 유지되는 건 아니다.

돈은 사람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결코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는다. ‘선택의 조건’이라는 책에는 오히려 돈은 인간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독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사이언스’ 잡지에 나온 세 가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실험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는 욕구가 적었고, 또 역으로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성향도 약했다. 돈은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독자적으로 살게 만들어 비사회적인 성격을 강화시킨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또 선택할 게 많은 풍족한 세상에서 보다 많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물질로 넘쳐나는 과잉사회에서는 버리고 줄이고 덜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최후의 제국’은 돈을 받들어 모시는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탐욕 속에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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