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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 <27> 축복받은 한 산골 초등학교의 졸업식
2월 초순,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동창초교)의 교장(박홍영)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는 13일에 전교생 13명 가운데 4명이 졸업을 하게 되는데, 이들에게 일종의 ‘격려사’를 써달라는 부탁이었다(졸업 연·월·일을 숫자로 배열하니 ‘2013.02.13’이 된다. 절묘하다. 아마 4명의 졸업생들은 이 졸업일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것 같다).

지난 2010년 가을부터 강원도 깊은 산골(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똬리를 틀고 농부이자 전원칼럼리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긴 한데, 지금은 누가 봐도 명백한 농한기이니 마땅히 사양할 구실(사실 격려사를 쓰기에는 좀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원고(제목은 ‘자연이 행복이다’)를 작성했다. 도시가 아닌 자연이 행복의 원천이니,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고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이를 잊지 말라는 내용을 담았다.

졸업식 하루 전인 12일, 또 전화를 받았다. 격려사까지 썼으니, 이번엔 졸업식에 참석해달란다. 내빈 자격으로 초대를 받은 셈인데 몇 번 사양하다가(이번에도 역시 주제넘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마을행사, 그것도 성스러운(?) 졸업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직 외지인의 신분(마을에 살고는 있지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필자로서는 일종의 의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화를 끊고서는 가만히 필자의 과거 졸업식을 하나하나 더듬어봤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의 첩첩산골에 있는 작은 학교(사북면 지촌초교)에서 5학년까지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은 성남시 성남초교에서 했는데, 당시 학생들이 넘쳐나(필자는 1955~63년생 베이비부머 758만 명중 한사람이다), 당시 한반에 60명씩 모두 10반이나 됐다. 졸업생이 600명이나 되니 시골 촌놈이 무슨 기억남을 일이 있겠는가? 매년 개근상만 받았다.

 
지난 13일 열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초등학교의 졸업식 모습. 전교생 13명 중 4명이 이날 졸업을 했다. 전교생이 나와 교가를 합창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졸업식도 특별한 추억은 없다. 우등상은 남의 일이고,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으니 가족과 함께 달랑 사진 한 장 찍은 게 전부다(밀가루 뿌리고 옷 찢는 그런 나쁜 짓은 절대 안했다). 물론 이 때도 3년 개근상은 꼬박 꼬박 챙겼다. 머리 대신 성실성만큼은 일찍이 인증 받은 것이다(전원으로 오기 전 22년의 직장생활 또한 줄곧 한 곳에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초중고 12년간 만날 개근상만 받다가 대학 졸업식 때는 우등상(흔히 이런 걸 ‘이변’이라고 한다)을 받으러 높은 단상에 오른 적이 있지만, 그 때도 그저 수많은 졸업생 중 하나였을 뿐 특별한 추억은 없다.

그런데 동창초등학교는 전교생이 고작 13명이고 그중 4명이 졸업을 한다고 하니, 졸업식장이 얼마나 황량하겠는가(졸업식장에 가지 직전 까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반 백수 신세인 이런 기회에 인력동원 봉사라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졸업식 당일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착각이었다. 아직 흰 눈이 시루떡처럼 쌓인 운동장에는 졸업행사에 참여하고자 온 차량들로 붐볐다. 내촌면에서 소위 ‘내노라’하는 분들(직함은 생략. 그런데 ‘~장님’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은 총출동한 것 같았다. 졸업생은 4명인데, 선생님과 관련 학부모 말고도 수십 명은 족히 되는 하객들로 비좁은 졸업식장은 시끌벅적했다. 마치 마을 잔칫날 같은 분위기였다. 

식전 행사로 4명의 졸업생이 하객들 앞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다.

졸업행사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알찼다. 먼저 식전 행사로 4명의 졸업생이 나와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동안 갈고닦은 바이올린 연주(곡명은 ‘나의 살던 고향은’이다) 실력을 뽐냈다. 아마도 이들은 이날 연주곡처럼 훗날 고향마을과 동창초교에서 놀던 때를 늘 그리워하리라.

상복도 터졌다. 슬쩍 세어보니 졸업생 한명이 평균 4개의 표창을 받는다. 요즘 상이 후한지는 모르겠으나, 매년 딱 한번 개근상 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었다(필자 아이들도 홈스쿨링을 하다 보니 상 하고는 거리가 멀다).

계속 보고 있자니 상만 주는 게 아니다. 장학금도 푸짐하다. 경조사 때 부조금 챙겨주는 식으로 졸업생 한명에게 몇 개의 장학금이 주어진다. 여기에 더해 무료 졸업앨범에 선물세트까지 한 아름 안겨준다. 이색적인 검도복과 죽도 전달식도 가졌다(이 학교는 박홍영 교장선생님이 직접 검도를 지도한다). 단순히 그냥 주는 게 아니라, 건건 마다 졸업생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이들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힘찬 응원과 격려가 듬뿍 담겨있다.

 
박홍영 교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만 같았으면 정말 좋겠다”며, 지역교육공동체의 꾸준한 관심과 협력, 지원을 당부했다.

지금까지 이들을 교육하고 지도했던 교장선생님과 일선 선생님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 또한 졸업행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동영상 ‘성장앨범’은 졸업생들의 입학 시점부터 졸업 때까지의 갖가지 학교활동 및 추억들을 고스란히 담았다(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졸업 당사자들의 남다른 소감과 새 각오는 물론 교장선생님과 지도 선생님들의 격려와 당부, 저학년 후배들의 이별의 소감까지도 세세하게 담아냈다.

또한 필자를 포함해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분들의 격려사를 담은 졸업문집도 만들었다. 박홍영 교장은 격려사를 통해 “여러분이 우리나라의 미래”라며,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열심을 다해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라”고 따뜻한 격려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식전행사로 선뵌 졸업생들의 바이올린 연주의 감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졸업생을 포함한 전교생(13명)이 총 출동한 사물놀이 공연을 펼쳐졌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시작된 사물놀이는 학생들이 점점 몰입해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신명난 장단으로 좁은 졸업식장을 축제 한마당으로 바꿔놓았다. 운집한 하객들의 박수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동창초교 사물놀이패는 여러 행사에서 금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학부모들은 축가로 화답했다.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윤 모씨의 노래(제목 ‘사랑으로’)는 하객들이 마지막 구절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를 힘차게 함께 따라 부르면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고, 더불어 모두가 하나 되는 기쁨을 맛보게 했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졸업장 및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푸짐한 장학금과 선물도 함께 전달됐다.

이날 졸업식은 필자 혼자 걱정했던 시골학교의 썰렁한 졸업행사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마을공동체 전체가 진심으로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고 그들의 앞길을 격려해 준 ‘축복의 졸업식’이었다. 아직 도시 물이 덜 빠진 필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날 행사는 또한 외지인(필자를 포함한 몇몇을 말한다)과 지역주민 간에 드리워져 있던 어떤 거리감이나 어색함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주었다. 농촌에서 학교란 비단 아이들의 교육장소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넓게 보면 지역화합 및 지역발전 측면에서도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문을 열어 72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창초교의 앞날이 순탄치 많은 않다. 동창초교는 올해 4명의 졸업생을 내보내고 나면 전교생 수가 9명으로 줄어든다(그나마 최근 1명이 전학을 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상대적으로 젊은 학부모들이 계속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농촌공동화, 농촌고령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학생 수가 적다보니 툭하면 폐교 얘기가 불거져 나온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앞서 박홍영 교장은 졸업식 인사말을 통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며, 지역교육공동체의 많은 관심과 협력, 지원을 부탁했다. 그 말 속에는 올해 졸업식을 개최하는데 대한 남다른 기쁨(지난해에는 아예 졸업생이 없었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해서 졸업생을 배출해내는 배움의 터로 존속되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녹아있었다. 

졸업생을 포함한 전교생13명이 사물놀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동창초교 사물놀이패는 여러 행사에 참여해 금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시대적 화두인 귀농·귀촌을 시골학교(교육)와의 연계를 통해 상생으로 풀어낼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박 교장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는 “귀농이나 귀촌시 애로사항으로 꼽는 자녀교육과 주민융화 문제는 자녀를 시골 초등학교에 보냄으로써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시골학교는 배움의 터 이자 지역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 자녀교육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레 주민융화까지 이뤄진다는 것이다.

교육효과 또한 크다. 박 교장은 “학생 1인당 교육 투자액 등을 단순하게 비교해 봐도 시골 초등학교의 교육복지 수준은 도시학교보다 훨씬 높다”라며, “특히 축복받은 자연환경 속에서 창의·인성교육, 지덕체 교육이 가능하고 튼튼한 건강 또한 덤으로 얻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생명력 충만한 자연은 그 자체가 곧 학교요 선생님이다. 산속 진달래로부터 강가의 조약돌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교과서이다. 자연은 끝없는 교훈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 아름다운 경치를 매 순간 보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신비를 늘 깨닫는다면 이보다 참된 교육의 기초를 튼튼하게 쌓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강원도 산골의 한 초등학교의 졸업식은 그래서 축복이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전원&토지 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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