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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해남 달마산 도솔암--구름 위 암자, 여기가 ‘한국의 장가계’
[헤럴드경제=해남]하늘 높이 치솟은 뾰족한 바위, 그리고 그 속의 작은 암자, 주변은 90도 감감 절벽이다. 이 이국적인 경치, 충분히 신비스럽다. 어디 이 뿐이랴. 암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다도해 역시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가 한국의 경치 맞나. 내 눈을 다시 확인해봤다. 처음 사진으로 접하고 나는 중국의 장가계(張家界ㆍ장자제)인 줄 알았다. 좀 심했나. 어쨌든 나는 바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서울에서 가장 먼 길을.

‘땅끝마을’로 유명한 전남 해남이다. 달마산 도솔암(兜率庵)은 이 경치 하나만 보고 가도 ‘본전’ 뽑을 것 같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치솟은 절벽 위의 암자가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멋진 암자지만 이 달마산 도솔암은 베일 속 암자다. 산 이름도 무척 ‘불교’스럽다. ‘남도의 금강산’ 달마산(達摩山). 동국여지승람에 ‘달마대사의 법신이 늘 상주하는 곳’이라고 한 줄 소개돼 있을 정도다. 달마산은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인도에 걸쳐 산이름으로는 이곳 밖에 없을 정도로 이 산은 ‘선택’받았다.

1200년대 중국 남송시대 사람들은 여기까지 와서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려갔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들 조차 이 산에 고개 숙이며 기도를 했던 산이다.

통일신라시대 고승 화엄조사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천년 기도사찰로 유명했지만 근래 수백년간 폐사 단계에 이르던 것을 현재의 주지 법조 스님이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이곳에 대해 3일간 연속 선몽을 꾸고 찾아와 부흥시켰다. 현존 스님의 이 실화가 전설 속 이야기 같다. 이 법조 스님은 이후 지금까지 11년을 이곳에 머물고 계신다. 이전에 약 30년간 다른 스님들이 복원하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했는데 법조 스님이 짧은 기간에 단청과 복원을 마치는 신기(神氣)를 발휘, 불가사의한 불사로 회자되고 있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찾아가는 길은 쉽지않았다. 나는 해남군청 홍보계 정근순님과 해설사 전희숙 선생님과 함께 나섰다. 해남읍에서 완도 땅끝 가는 길 13번 국도로 내려가다가 성묘산성이 있는 초호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송지면사무소에서 미황사 방면으로 가다가 오른쪽 도솔암 쪽으로 들어가서 마봉리 마련마을로 찾아가야 한다. 이 마련마을이 핵심이다. 마봉리와 마련마을 이름은 옛날 제주도에서 말을 싣고와 풀어뒀다 해서 말(馬)과 관련을 맺고 있다.

2차선 도로에서 왼쪽의 마련마을 골목길로 접어들면 하얀집 앞에 두갈랫길이 있다. 왼쪽길로 가서 다음부턴 오른쪽길로만 직진하면 마봉약수터를 지나 도솔암 길로 오르게 된다. 중계탑 아래 도착하면 왼쪽에 ‘도솔암 800m’라는 간판이 나오는데 적당히 차를 주차하자. 따로 주차장이 없다. 이렇듯 험하니 지금까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도솔암 쪽 달마산으로 오르는 이 찻길은 좁고 험했다. 임도를 콘크리트로 포장했지만 가파른 경삿길 오른편은 까마득한 절벽으로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운전도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 운전석에 앉은 전근순님은 “난 앞만 볼거야”라고 해서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이 길을 어느 강심장 관광버스 기사가 오르곤 한다니 승객들은 얼마나 아찔했을까.

산을 막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는 온통 민둥산이다. 2년 전에 산불이 났다는데 너무 많은 면적을 태워버렸다고 했다.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부터는 황홀한 광경이 펼쳐진다. 도솔암 가는 오솔길을 바라보며 오른쪽은 완도와 남해가, 왼쪽은 진도와 서해가 눈 앞에 활짝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 숱한 다도해도 아름답다.

좁고 울퉁불퉁한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크고작은 바위 봉우리는 모두 수석을 조각해 촘촘히 세워놓은 불상같다. 이 수많은 바위를 1만불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달마산에서 삼배 기도하면 곧 삼만배 기도한 것과 같다고 한다.

도솔암 가는 오솔길, 멀리서 본 달마산, 암자에서 본 진도 쪽 풍경, 법당 맞은 편의 삼성각.

길이 있을 듯 말듯했던 것을 스님이 오랜 기간 조금씩 닦아 그나마 이 정도인데 그래봤자 한 사람이 서면 꽉 차는 길이다. 한참 후에 만난 이곳 주지스님은 이보다 더 넓어도 안된다고 하셨다. 이 자체가 자산이라고 하셨다. 15분 정도 걸으니 바람결에 목탁소리가 귓전을 파고 든다. 다 왔나 보다. 소리나는 왼쪽으로 고개 돌리니 필자가 봤던 그 그림 같은 절벽 바위 위 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맞아, 바로 이거였어” 하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뭐가 그리 급했던지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어차피 충분히 보고 즐기고 찍어도 될 일을, 바람결에 사라지기라도 할 것 처럼 ‘일단 찍고 보자’가 돼 버렸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입구 돌계단.

한참 찍은 후 전 선생님은 필자에게 왼쪽길로 내려가 삼성각에서 이 암자쪽으로 사진을 찍고 올라오라고 팁을 주신다. 암자에서 모델로 서 주겠다면서 촬영하란다. 그러겠노라 하고 삼성각으로 가서 대략 50m 거리의 암자를 올려다 보니 이 경치 도무지 형언할 방법이 없다. 천자 길이의 돌기둥을 세워 그 위에 암자를 지은 것 같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아주 신이 났다.

달려가듯 암자로 뛰어올라가니 정말 손바닥만한 터에 조그만 암자가 걸터앉아 있었다. 암자가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이 됐던지 키 큰 바위들이 울타리가 되어 줬다. 그래서인지 밖에서 암자를 볼 땐 절벽 위라 아찔하게 느껴졌는데 바위담으로 둘러싸인 암자 마당에 서니 오히려 안락한 느낌이다. 바로 앞의 절벽 보다 먼 경치가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그 공간에 그래도 마당도 있었다. 아주 작지만. 외로이 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마당에서 아까 그 삼성각 쪽을 바라보는 경치는 1만불상이 서해쪽으로 달려내려가는 모습의 장관이었다. 마당 주변 바위 틈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과 농경지, 그 너머 다도해들, 아련히 보이는 진도, 한 자리에서 너무 많은 풍경을 보는게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큰 바위들 사이로 작은 돌로 촘촘히 울타리를 쌓아올린 것도 있는데 이곳 주지 스님은 고려시대 때 스님이 기도하며 돌을 주워다 쌓았다고 했다. 기능인이 한 게 아니어서 조잡하게 쌓았는데 그게 더 운치있다고 하셨다.

해남 달마산 도솔암
해남 달마산 도솔암. 자연 바위와 작은돌로 쌓은 돌담.

도솔암은 이 자그마한 법당과 삼성각 하나가 전부이고 스님은 산봉우리 너머 박스집에서 생활하신다.

이 곳 법조 스님은 ‘괴팍’하기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작은 절에 11년을 홀로 계셨는데 자타공인 ‘괴팍 스님’이시다. 하지만 필자는 전 선생님의 친분 덕분에 스님과 차 한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셋은 스님 앞에 나란히 앉아 과일과 차를 권해 받고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은 우리네 처럼 일반인으로 치면 참 인정이 많으신 분이신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농담삼아 하시는 말씀은 “이렇게 경치좋은 곳에서 스님 마저 너무 좋아버리면 안되재”라고 하신다. 모두 웃고 말았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산다고 하셨다. 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 법당 아랫쪽 용담굴(우물)을 기도처로 삼고 지내던 무속인들이 있었는데 모두 ‘추방’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암자가 비어있듯이 방치돼 있다보니 무속인들이 기도처로 삼아 모여들었던 것이다.

대화 도중 돌직구도 날리시고 농담도 잘 하시고 입담이 아주 좋으셨다. 스스로를 문화재라고 너스레도 널어놓으시는데 필자와도 금세 친해졌다. “다음에 다시 찾으면 그때도 차 한 잔 주세요” 라고 했더니 “그건 모르겠다” 며 농담하신다. 필자에게 나이를 물으시더니 답하는 사이 또 고향을 물으신다. 물으시면서 답하는 말도 다 듣고 계셨다.

스님은 특히 필자의 직장과 대주주에 대해, 또 필자의 개인적인 일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꼬박꼬박 답변을 드렸더니 맞장구 치시며 성원까지 보내시기도 했다. 

도솔암 주지 법조 스님께서 차 한잔 내 주셨다. 사진 촬영 한사코 사절하시는데 억지로 허락을 받아내고 나중에는 필자와 기념촬영도 해주셨다.

주말 마다 시골로 돌아다니는 필자의 얘기를 들으시고는, 루소는 오늘날 만큼도 개발이 안됐던 16세기에 이미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필자를 응원해 주셨다. 필자는 종교가 없지만 들어서 좋을 말씀이라 보약으로 여겨 귀를 세우고 경청했다. 어차피 스님 앞에 앉았는데 듣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스님도 자연에 파묻혀 살다보니 불심, 그리고 모든 일의 개념이 정립되더라고 하셨다.

현재의 박스집 거처가 너무 허술하고 살풍경이어서 작고 절에 어울리는 요사채를 지으시는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생각 중이고 주변에서도 다들 도와줄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다 부처님 뜻이 아니겠냐고 하시면서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정리하신다. 그렇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스님은 자연 속 생활이 최고의 불공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강조의 말씀과 함께.

도솔암 입구와 법당 마당.
법조 스님이 기도 후 하시는 의식, 요사채로 가시는 스님, 달마산의 1만불상 바위들.

이 도솔암은 이제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와 ‘각시탈’ ‘추노’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화면에 살짝 스쳐지나가면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찰 순례단이 주로 찾아오는 곳이고 알음알음 가족단위로 찾고, 지나가던 등산객이 들러 가는 정도다.

도솔암 오솔길 바위 사이로 길게 줄지어 핀 철쭉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그 어느날 아침 구름에 휘감긴 도솔암의 황홀한 모습을 꼭 한번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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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산 등산로 :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달마산은 두륜산 남쪽에 위치하는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내려와 땅끝마을로 이어진다.

산 정상 부근에는 능선을 따라 불상과 같은 바위들이 수없이 줄을 선 듯 장관을 이룬다. 이 바위들은 모두 규암으로 돼 있다. 이 경치를 상공에서 보면 마치 공룡의 등뼈 같은 모양이다.

한반도의 맥을 땅끝마을로 전달하는 마지막 코스로 이 맥은 바다 건너 제주도로 이어진다. 이 산에는 현재 도솔암과 미황사가 있고 등산객들이 찾고 있는데 자신의 형편에 맞게 코스 길이를 선택해서 걸으면 남해와 서해를 환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도솔암이나 미황사 등으로 비교적 짧게 등산할 수도 있지만 남북으로 길게 산행을 종주코스로 잡으면 대략 7시간 걸린다. 하지만 등산을 싫어해도 짧게는 몇 십분만 걸어도 남해 서해의 절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명소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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