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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의 기적 일군 일등 공신 남덕우 전 국무총리
[헤럴드경제=안상미 기자]“천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노동과 머리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노동으로 경쟁하자면 노사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고 머리로 경쟁하자면 과학기술과 사회 각 분야의 문화수준을 높여야 한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회고록 ‘경제개발의 길목에서’(2009년) 361쪽>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수 년전에 조언한 말인데, 지금의 상황에서도 이보다 더 나은 해법은 없는 듯 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끈 남덕우 전 총리가 지난 18일 별세했다. 89세. 지병으로 지난 6일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회고록을 통해 스스로를 “나는 성공한 정책가도 아니고 성공한 경제학자도 아니었다”고 낮췄지만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유능한 경제관료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EPB) 장관을 역임하면서 수출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주도했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당신도 좀 당해봐.” 1969년 당시 45세의 서강대 교수이던 그에게 재무부 장관 임명장을 주며 박 전 대통령이 농담 섞어 건넨 말이다.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평가 교수단에 참여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남 전 총리는 재무부 장관 취임사에서 “장관은 과객(손님)에 불과하니, 공무원들이 잘해야 경제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했다. 그러나 ‘과객’ 생활은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대학교수가 장관으로 왔으니 몇 달 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예상과 달리 그는 4년 11개월간 재무장관, 4년 3개월간 경제부총리라는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77년 달성한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GNP 기준) 1000달러 돌파 등 한국 경제의 전환점이 된 성과들이 모두 그의 재임기간에 나왔다. 증권시장 개혁, 중화학공업 육성 등도 남 전 총리의 주도로 이뤄졌다.

80년대 초 국무총리를 지냈고 노년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해 경제 현안에 대해 조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자문단 좌장을 맡아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리는데 역할을 한 남 전 총리는 지난 3월 국가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현대화의 주역 남 전 총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뤄지며 오는 22일 영결식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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