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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33> 전원의 5월은 초록의 서정시로 물들다

  • 기사입력 2014-05-1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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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봄, 그중에서도 5월만큼 생명력 충만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달도 없다. 5월이 되면 농부들은 갖가지 작물을 심고 가꾼다. 필자가 사는 강원 산간지역의 경우 4월 감자와 옥수수에 이어 5월에는 고구마,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완두콩, 당근, 곤드레, 상추, 땅콩, 참외, 수박 등 식량작물은 물론이고 과채류까지 두루 심는다. 옥수수 또한 보름 간격으로 계속 심으면 추석 전후에도 쫀득쫀득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심고 기르며 맛보는 ‘농사의 재미’

4월 상·중순에 심은 감자와 옥수수는 5월 초가 되면 싹이 나온다. 풀을 억제하기 위해 씌운 검정비닐의 구멍 위로 살그머니 앙증맞은 얼굴을 내미는 감자와 옥수수 싹을 보노라면 신비로운 생명의 경이에 “아!”하고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온다.

이맘때 필자와 아내는 옥수수와 감자 싹 구하기에 나선다. 무슨 말인가 하면, 검정비닐에 구멍을 내어 옥수수 등 작물을 심고나면 이후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비닐구멍과 작물 심은 위치가 틀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일부 싹들은 검정비닐의 구멍을 찾지 못하고 캄캄하고 후텁지근한 비닐 속에서 헤매다 거의 죽기 일보직전까지 이른다. 이때 검정비닐의 구멍을 찾지 못한 싹들을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낸다.

5월의 전원에서 봄을 뜯는 사람들

검정비닐 속에 갇힌 싹을 구하면서 주변 잔풀도 제거해준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애초 검정비닐 씌우기 작업을 할 때 팽팽하게 제대로 해두어야 두 번 일을 안 한다. 사실 농사일이 모두 그렇다. 그런데 초짜 농부에게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선 최근 몇 년 새 부가가치가 높은 산채를 재배하는 농가가 부쩍 늘었다. 삼지구엽초(음양곽)도 그중 하나다. 이 삼지구엽초의 유래가 재미있다.

중국 사천 북부 지방에 양의 일종인 ‘음양’이라는 동물이 많은 ‘첩(암양)’을 거느리고 사는 것을 유심히 지켜 본 칠순 노인이 마침내 이 동물이 삼지구엽초를 뜯어먹고 정력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노인도 이 풀을 뜯어다 다려먹은 후 자식도 낳고 회춘하게 되었다. 이후 음양이 먹던 콩잎이라 하여 음양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월의 산과 강

봄볕 따사로운 5월이지만 중순을 넘어서면 한낮에는 초여름처럼 무더울 때도 많다. 이때 각종 모종은 비오기 전날이나, 저녁에 심는 게 좋다. 그래야 더위를 덜 타 말라죽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대개 초보농부들은 땡볕에 축 늘어져 있는 고구마 등 모종을 보게 되면 애가 탄다. 그래서 한낮에 호수를 연결해 물을 듬뿍 뿌려준다. 필자 또한 그랬다. 이를 본 동네 어른이 한마디 한다.

“햇살이 따가운 한낮에 물을 주면 안 준 것만 못해. 오히려 다 녹아버린 다구. 물을 주려면 해 뜨기 전 아침이나 해가 넘어갈 때쯤 줘야 하는 것이여.”

왜 그럴까? 이는 작물 스스로가 타는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수분을 찾아 땅속 깊이 자신의 뿌리를 내려야 튼튼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기 애처롭다고 바로 물을 주면 작물이 병약해져서 금방 말라죽는단다. 작물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자녀를 교육하고 기르는 이치 또한 마찬가지일 게다.

실제로 고구마 모종을 심은 뒤에 이파리와 줄기 윗부분이 말라버려도 땅에 묻힌 아래쪽 줄기가 살아있으면 뿌리를 내려 다시 새순을 낸다. 이런 작물의 끈질긴 생명력을 지켜보노라면, 그 생명에너지가 마치 내 몸속으로 충전되는 듯하다. 작물을 키우는 일 자체가 자연치유요, 신성한 생명작업임을 깨닫게 된다.

작물의 줄기가 왕성하다고 해서 풍년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줄기만 부쩍 웃자라게 되면 그쪽으로 영양분이 집중되어 되레 열매는 잘다. 그래서 감자는 1~2개 줄기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뽑아준다. 이때 북주기를 해준다. 옥수수는 굳이 곁가지 치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많은 곁가지가 발생할 경우 일부 제거해준다. 고추도 방아다리(Y) 아래 순과 잎 등을 미리 따준다. 

 
열목어가 서식하는 깊은 산속 계곡

▶자연이 주는 무위의 아름다움, 그리고 선물

5월을 맞은 집 주변은 자연 스스로가 꾸미는 ‘자연정원’으로 탈바꿈한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지만 이름 없는 잡초들이 피워내는 봄의 색은 정말 소박하고 순수하다. 4월의 하얀 냉이 꽃과 노란 꽃다지 꽃에 이어 5월에는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워낸다. 하얀 꽃 토끼풀과 분홍색 메꽃, 보라색 꽃 지칭개들이 순박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사람이 아무리 멋진 옷을 입더라도 저 들꽃의 아름다움에 견줄 수 있으랴!

자연에 순응해 묵묵히 논밭을 일구는 농부 같은 꽃들이다. 그래서 땀 흘리는 농심은 무위의 아름다움에 취하곤 한다. 산자락에는 조팝나무와 산벚나무가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저 고개 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힐링이 된다.

들판에는 민들레와 (왕)고들빼기가 지천이다. 함께 김치를 담가 먹으면 봄 반찬으로 제격이다. 쇠비름, 명아주, 개망초 등도 여린 싹을 취해 나물로 먹으면 봄의 미각을 돋워준다.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쇠비름이 지금은 심혈관 질환과 당뇨 등에 효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효소마니아들에게 인기 상한가다.

입체적인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산으로 가면 자연의 선물 또한 한 아름이다. 향취가 좋은 다래순은 된장찌개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자연방향제로도 그만이다. 두릅과 엄나무순도 별미다. ‘산나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곰취는 말할 것도 없다.

필자는 매년 5월이면 인근 산으로 곰취산행에 나선다. 그런데 이 곰취는 해발 800~900m 이상 되는 높은 곳에서 주로 자라기 때문에 곰취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만큼 채취 산행이 힘들기 때문에 하산하면 거의 녹초가 된다.

대개 등산로 주변은 이미 부지런한 이들이 다녀간 뒤라 발길이 미치지 않은 급경사지를 오르내리면서 곰취를 뜯어야 한다. 운 좋게 군락지를 만나게 되면 한 곳에서 듬뿍 자연의 선물을 취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한 장씩 뜯어 모은다. 이 경우 이건 곰취가 아니라 ‘황금취’가 된다. 곰취 중 큰 것은 보통 어른 얼굴만 하다. 이 때 참나물은 덤으로 얻는다. 또 잔나비걸상버섯이나 표고버섯 등도 만날 수 있다.

잔나비걸상버섯
 
▶5월의 에피소드: 모기보다 무서운 흡혈 날벌레

5월의 전원생활이라고 하면 대개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물, 저 푸른 초원 위에 핀 아름다운 꽃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계절의 이면에 전원의 불편한 진실도 도사리고 있다.

5월에 농사를 짓다보면 황혼녘에 떼로 몰려다니며 사람의 손과 얼굴에 붙어 피를 빠는 날벌레가 있다. 가장 무서운 봄철 불청객이다. 누구는 ‘모기등에’라고 하고, 누구는 ‘깔다구’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다. 필자는 모기보다 더 겁나는 게 바로 이 흡혈 날벌레다. 이 날벌레에게 팔과 다리, 얼굴을 무차별 공격당한 뒤 며칠 동안 가려움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입과 눈 주변이 물리게 되면 금방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몹시 가렵다.

한번 당한 후에는 밭일을 나갈 때 완전무장을 한다. 머리에는 눈과 코, 입만 나오는 복면(?)과 모자를 쓰고, 긴소매와 긴 바지에 장화를 착용한다. 한낮에는 마치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땀이 비 오듯 하지만, 그래도 이 날벌레에 물려 가려움증으로 고통을 겪는 것보다는 참을 만하다.

5월에는 쥐와의 작은 전투도 피할 수 없다. 시골에는 각종 쥐들이 많다. 그래서 매년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11월에 쥐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따뜻한 집으로 침투하려는 쥐떼와 일대 격전이 불가피하다. 이때 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한 지붕 아래서 쥐와의 동거도 감수해야 한다.

필자는 매년 이맘때면 맨땅으로 되어있는 집 지하의 바닥에 깔아놓은 스텐리스 방충망을 보완하는 작업을 한다. 땅을 파고 침투하는 땃쥐(두더지과의 쥐)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쥐들이 타고 올라올 수 있는 집 주변 뽕나무 가지도 말끔히 베어준다.

그러나 날벌레든, 쥐든 어찌 보면 이들과의 동거 아닌 공존은 불가피하다. 그게 자연이고, 자연인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나물의 여왕' 곰취

▶5월의 절기: 입하와 소만

입하((立夏·5월5일)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계절이 여름에 들어섰다고 해 입하라 한다. 입하 무렵이 되면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몹시 바빠진다. 해충 또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병충해 방제는 물론 잡초 제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이때부터 산과 들의 푸르름이 더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찻잎을 채취한다. 보통 곡우 때 채취해 만든 차를 최상품으로 여기지만, 입하 무렵에 만든 차도 이에 못지않다. 입하까지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삼춘차(三春茶), 입하 후에 만든 차를 사춘(四春)이라 하며 통칭 입하차로 부른다. 또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즈음에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먹기도 한다.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의미의 소만(5월21일)에는 모내기와 보리 베기를 한다. 또 웃자란 잡초를 제거하느라 바쁘다.

소만 절기에는 기후변화 특히 비 온 뒤 감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 무렵에 부는 바람이 몹시 차고 쌀쌀하다는 의미로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때론 벼락과 천둥을 동반한 기습 호우와 강한 돌풍이 전원 보금자리와 들녘을 할퀴고 가기도 한다.

박인호 전원칼럼리스트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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