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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 <37> 가을걷이와 한가위…넉넉한 9월의 산야

  • 기사입력 2014-09-05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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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분주한 가을걷이와 함께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달이다. 들녘의 곡식은 황금빛으로 변하고, 각종 과일과 열매 또한 익어간다.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8일)도 이때 들어있다. 전원에서 농사를 짓게 되면, 비록 돈은 없어도 애써 키운 농산물이 풍성한 결실로 보답을 하니 가을철 전원의 곳간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직접 먹어 배부르고, 또한 전원의 곳간을 열어 이웃에 나눔을 하니 마음의 곳간은 다시 풍성하게 채워진다.

9월의 전원풍경

■9월의 절기: 백로와 추분

절기상 백로(白露·8일)가 되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밤엔 기온이 내려가니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그래서 백로 즉 ‘흰 이슬’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햇살이 뜨거워 오곡이 여문다. 경상남도 인근의 섬 지역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천석(十里千石)을 늘린다’고 하여 이 날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여겼다. 하지만 큰 비나 태풍이 오면 다 자란 곡식이 쓰러질 수 있어 일반적으로 비가 오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고 했다.

들판의 곡식은 어느덧 누렇게 익어간다. 산에서는 산오미자가 빨갛게, 머루는 짙은 보랏빛으로 물든다. 잡초의 기세 또한 하루가 다르게 수그러든다.

추수철이 다가오니 온 들에 먹을거리가 넉넉하다. 곳간에 쌓이는 농산물을 보면 비록 돈은 없어도 도시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배부름이 있다. 이때는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나는 부자다”라고 감히 말한다. 가을걷이의 맛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23일)이 되면 하루해는 더욱 짧아진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는 찬이슬이 옷을 적시고 저녁 해는 순식간에 떨어지니 가을걷이 하는 일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농사는 타이밍이다. 가을걷이는 특히나 그렇다. 봄에 씨 뿌리는 것은 며칠 미룰 순 있지만 가을걷이는 미룰 수 없으니 하루하루가 바삐 돌아간다.

검붉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리고, 가지와 고구마줄기도 말리고, 산에서 얻은 밤과 도토리도 말려 겨울양식으로 저장한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홍천 산골의 경우 추분이 되면 밤과 새벽 기온이 뚝 떨어진다.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수확한 고구마는 숙성기간 중 냉해를 입지 않도록 이불이나 거적 등으로 덮어 보온을 해준다.

송이버섯

■행복한 가을산행

‘즐산’, ‘풍산’, ‘대산’, ‘행산’…

아마도 일반인들은 낯선 산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이는 산 이름이 아니다. 약초와 버섯 등을 채취하러 다니는 ‘꾼’들 사이에서 즐겨 쓰는 그들만의 은어(줄임말)다. 실제 산약초 전문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방문하면 마치 보통명사처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풀어보면 안전한 산행(안산), 즐거운 산행(즐산), 풍성한 산행(풍산), 대박 산행(대산), 행복한 산행(행산)을 뜻한다. 버섯의 계절, 가을을 맞은 요즘 유행어는 물론 ‘풍산’과 ‘대산’이다. 단순히 친목과 건강을 위한 일반산행이 아니라 버섯 채취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산행이다.

필자 역시 매년 9월이면 몇 차례 송이버섯 산행에 나선다. 강원도 홍천 산골로 들어온 지 햇수로 5년째이지만, 아직 가을 송이와 능이버섯을 직접 채취하는 손맛을 보지는 못했다. 매번 ‘대산’은 아니어도 ‘풍산’은 기대하며 높고 가파른 산들을 누비고 다녔지만, 지금껏 단 한 개의 송이와 능이도 만나보지 못한 채 결국 극기 산행으로 끝났다.

어쩌다 버섯 풍년이 든다고 해도 이미 부지런한 마을주민들과 외지 버섯꾼들이 샅샅이 훑고 지나간 터라 늘 뒷북만 쳤다. 송이 나는 곳을 아는 주민들과의 동반 산행은 언감생심. 옛말에 “송이가 나는 자리는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송이 산행 허탕을 반복하면서 얻은 값진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욕심을 앞세운 산행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비록 한순간 ‘풍산’과 ‘대산’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것은 ‘즐산’과 ‘행산’, ‘안산’을 희생시킨 결과라는 사실이다.

욕심을 내다보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무리를 하게 되고, 이는 곧잘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또한 외지인(도시인)들의 무분별한 원정 버섯산행은 임산물 채취권을 가진 현지 마을주민들의 농외소득을 잠식하기 때문에 마찰을 빚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은 우리에게 봄부터 겨울까지 약초와 산나물, 버섯 등 많은 선물을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가을 산에는 송이 등 버섯 뿐 아니라 산밤과 도토리, 머루와 다래, 으름과 가래, 오미자 등 자연의 선물이 가득하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이런 자연의 선물을 많이 얻는 것도 아니다. ‘풍산’에 집착하던 필자 역시 욕심을 내려놓으니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했다. 송이는 아니지만 귀한 영지버섯을 만난 것.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지를 불로초라 여겼고, 양귀비는 이를 먹고 바르면서 아름다움을 유지했다고 전해온다.

근래 들어 ‘풍산’, ‘대산’을 겨냥한 각종 산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값진 약초와 버섯보다 산이 주는 더 귀한 선물이 있으니 바로 건강한 기운, 정기(精氣)다. 욕심을 앞세운 급한 산행은 이 정기를 흩뜨릴 뿐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조용히 산의 정기를 호흡하며 산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건강과 활력을 얻게 된다. 청명한 이 가을, ‘대산’ 아닌 ‘행산’을 떠나보면 어떨까.

고구마 수확

■가을걷이와 김장농사

필자가족의 옥수수와 고구마 사랑은 좀 유별나다. 특히 9월에 수확하는 고구마는 두엄이나 비료, 농약을 치지 않고 두둑만 제대로 만들어주어도 잘 자라는 친환경 먹거리여서 매년 모종을 1000개가량 심는다.

필자는 귀농 초기 농약과 비료를 금하는 것은 물론 검정비닐 멀칭(mulching·바닥덮기)도 하지 않고 고구마를 키웠다. 이렇게 자연농법으로 키운 고구마는 풀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 열매를 맺는 지라 잔뿌리가 유독 많았다.

고구마는 수확 전에는 맛있는 반찬 재료도 제공한다. 고구마 덩굴에서 순을 채취해 데쳐서 나물을 해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으면 가족 모두 밥도둑이 된다. 그만큼 별미다. 이렇듯 고구마는 줄기부터 열매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는 대표적인 친환경 효자 작물이다.

그런데 고구마는 줄기식물인 감자와는 달리 뿌리식물이라 수확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밤고구마에 비해 호박고구마는 뿌리열매가 땅속 여기저기 깊게 파고들기 때문에 캐는데 몹시 힘이 든다. 대개 삽과 호미 외에 삼지창까지 동원한다.

9월에는 가을걷이로 분주하지만, 한편으론 배추, 무, 쪽파 등 김장거리 재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강원 산골에서는 김장용 배추 모종 심기와 무씨 파종은 8월 중하순에 이뤄진다. 배추와 무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를 잡아주는 등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추가 남아나지를 않는다.

필자는 배추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돼지감자(뚱단지)를 이용한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돼지감자의 줄기와 잎, 꽃을 채취해 물어 부어 달이면 천연 살충제(독초액)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물에 희석해 배추와 무 밭에 뿌려준다.

도토리

■추석과 유쾌한 ‘전원중독증’

강원도 깊은 산골에 사는 필자 가족은 해마다 추석·설 등 명절 때면 거대도시 서울로 설레는 외출에 나선다. 보고픈 부모 형제, 친지를 만나러 ‘민족 대이동’ 행렬에 기꺼이 합류한다. 그런데 이 명절 나들이는 늘 당일치기로 끝난다. 이번 추석도 마찬가지다.

당일치기 추석 나들이는 사실 피곤하고 힘이 든다. 새벽녘에 출발하여 한밤에 다시 산골 집으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필자와 집사람이 동시에 앓고 있는 어떤 ‘병(?)’ 때문이다.

그 흔한 명절증후군은 결코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일종의 ‘도시기피증’, ‘도시증후군’, 뒤집어 표현하면 ‘전원중독증’, ‘전원집착증’이라고나 할까. 전원에서 살 때는 심신이 평안하고 활력이 넘치지만, 잠시 도시로 나가면 마음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그런 ‘병 아닌 병’이다.

전원생활 5년차인 지금, 이 병은 거의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도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시끄러운 소음과 뿌연 대기, 분주한 사람들과 차량들, 하늘을 가린 빌딩들, 그리고 그 속에서 엮어지는 치열한 경쟁 등 도시의 삶에 대한 내성이 점차 상실된 결과다.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향하는 귀농·귀촌은 시대적 트렌드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의 귀소본능과 정부·지자체의 각종 지원책에 힘입어 2009년부터 시작된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21만 명) 등 도시인들의 전원행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적지 않은 귀농·귀촌인들이 억대 부농과 대박의 꿈에 젖어 도시보다도 더욱 치열한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내몬다. 느림과 여유, 쉼을 얻고자 시작한 전원생활은 온데간데없고, 고소득 작물 재배와 온라인 홍보 강화 등 돈벌이에 사활을 건다. 그 결과,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가 따르고, 되레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물론 실제 전원생활에 있어 관건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다. 가족 구성원이 검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소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추구는 자칫 초심을 흐리게 하고 결국 부정적인 결과만 남긴 채 끝날 수도 있다.

진정한 전원인이 되려면 도시의 돈과 명예 등은 내려놓고 자연이 주는 풍요와 평화로움, 안식과 유익을 제대로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전원생활은 자발적인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전원생활은 도시를 비워내고 자연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전원중독증은 그 과정에서 맞게 되는 유쾌한(?) 고질병이다. 행복한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자발적으로 이병에 감염되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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