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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그래도 덕담으로 시작하자
19일은 을미년 설이자 절기상 우수(雨水)다. 2010년 가을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한 필자가 시골에서 맞는 5번째 설 명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설을 맞는 농촌의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어수선하고 다소 침울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해 땀 흘려 농사를 지었건만 농가의 소득은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전국적인 대풍이 되레 ‘풍년의 저주’를 불러와 농산물의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웃마을의 한 전문 농업인은 “지난 일은 잊어버리려고 해도 올해도 실패가 되풀이 될까봐 자꾸 걱정이 된다. 설이 다가와도 전혀 즐겁지 않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해가 갈수록 마을주민들 간 갈등과 반목도 심해지는 것 같다.

농촌마을에서는 총회를 통해 지난 한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해의 계획을 세운다. 최근 총회를 연 이웃마을은 총무를 새로 뽑는 과정에서 주민들 간 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총무가 무슨 감투인양 이를 놓고서도 패가 나뉘었다. 예전처럼 화합하는 마을 모습은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고 혀를 찼다.

3월 11일 전국 동시에 실시되는 농협ㆍ수협ㆍ축협ㆍ산림조합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서도 벌써부터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설 연휴기간을 전후해 향응이나 금품 수수 등 선거판 혼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골 단위조합의 경우 유권자인 조합원이 2000명도 안되는 곳이 수두룩하다. 서로가 ‘한 다리 건너면 아는’ 관계인 데다 토착 성씨 간 밀어주기식 세력 다툼까지 더해지면 마을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식 선거운동기간(2.26~3.10)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불법ㆍ탈법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가축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도 설을 맞는 농촌에 우울함을 더하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홍성군ㆍ세종시 등 충청도 일부 지자체의 축산 농가들은 아예 이번 설 연휴 때 찾아오는 친지, 자식들의 귀성을 만류하고 있다고 한다. 방역에 나선 지자체들도 설 연휴 때 친지, 가족들의 고향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각 지자체의 2015년 농업 보조금 및 대출 지원 사업의 선정결과를 놓고서도 “짜고 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013년에 강원도로 귀농한 김모(60) 씨는 “군청과 농업기술센터를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친분을 쌓아 정보력이 남다르고 발 빠른 소수 농민들만 매번 반복해서 사업선정의 혜택을 누린다”고 꼬집었다.

설과 우수를 앞둔 농촌의 현실은 이처럼 팍팍하고 분란도 많다. 그렇지만 설은 희망찬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기념하는 우리민족의 명절이다. 우수 역시 농부들이 부푼 꿈을 안고 서서히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때다. 설과 우수는 농촌의 새 희망을 여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김매순(1776~1820)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설날부터 사흘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면서 새해 건강과 성공을 바라는 덕담을 건넸다고 적혀있다. 육당 최남선은 덕담이란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으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농촌의 설은 이래저래 우울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덕담으로 시작하자. 새 희망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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