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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동장군과 꿀잠, 그리고 대한민국
2017년 1월 하순,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강원도 홍천 산골의 비닐하우스 안 작은 별채(농막)에서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던 필자는 뒤늦은 그의 도발에 맞서 부랴부랴 전투에 돌입했다. 그는 다름 아닌 동장군(冬將軍)이다.

그와의 대결은 주로 낮보다 밤에 치러진다. 특히 해뜨기 전 새벽녘에 가장 치열해진다. 기세등등한 그가 칼바람을 휘둘러대면 바깥 온도는 영하 20도까지 곤두박질친다. 별채의 실내 온도는 영상 10도를 유지하기도 버겁다(물론 난방비 부담이 가장 큰 이유다).

동장군에 맞서는 필자 가족의 전투태세는 그저 단순하다. 먼저 갑옷(?)부터 챙긴다. 내복은 기본이고 인조양털 위에 ‘군인용 깔깔이’를 덧입는다. 전기장판이 깔린 침대에는 침낭이 배치되고 그 위에 두꺼운 이불이 추가된다. 이 정도면 뭐 충분하다.

2014년 3월, 4인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본채가 너무 비좁아 좀 떨어진 비닐하우스 안에 작은 별채를 들였다. 필자만의 독립공간이다. 하지만 2015년과 2016년 1월에는 동장군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견디지 못하고 결국 본채로 피난 갔다. 그렇지만 이번 2017년 1월에는 끝까지 맞서 마침내 동장군을 이겼다.

귀농 초기 필자 가족의 혹한기훈련에 버금가는 겨울나기 과정이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귀농한 이듬해인 2011년 1월에는 매일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졌다. 이어 2012년 1월에는 아침 최저 영하 27도까지 기록했고, 급기야 2013년 1월에는 성난 동장군이 영하 29도의 살인한파를 몰고 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랬다.

그런데 필자가족의 극기훈련식 겨울 전원생활을 두고 어떤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심지어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겨울 내내 활동하기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은 옷을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자면 너무 불편하고 심지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추우면 많이 입고 많이 덥고 자는 것이 당연하다. 한겨울에도 도시의 아파트에서 반팔입고 생활하던 습관을 전원에서 그대로 이어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삶의 태도다.

역설적이게도 필자는 매년 1월 동장군과의 전투를 통해 진정한 ‘겨울안식’을 맛본다. 아마도 필자가 살아 온 54년 가운데 최소 15년은 잠을 잤으리라. 결코 짧지 않은 이 기간 중 필자가 맛본 최고의 꿀잠은 바로 동장군에 맞서 싸우던 조그만 별채에서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찌 보면 가장 열악한 주거 환경이고 수면 환경인데 말이다. 이는 사과를 몇 박스씩 쌓아놓고 먹어본들 아주 가끔 귀하게 먹는 사과 맛에 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깔려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하다. 산더미처럼 쌓고자 집착하는 재물욕도, 무소불위를 탐하는 권력욕도, 하늘을 가릴 듯 치장하는 명예욕도 내려놓기만 하면 대신 ‘평안’이라는 선물을 얻게 되니 말이다. 감사함이 곧 최고의 평안이다.

탄핵정국이란 격랑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어떤 감사함도, 평안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미혹이 판치고 혼란을 부추긴다. 비닐하우스 안 별채를 감싸주는 따사로운 햇볕에 감사하며, 조용히 하루를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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