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댓글 언론학
“한 정신과 의사가 댓글은 정신 건강에 안 좋다며 안 보는 편이 낫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댓글 안 봐요.”

한 후배 기자의 해맑은 얘기다. 이 얘기를 듣고 과연 맞는 말인지 고심에 빠진 적이 있다. ‘댓글을 보지 말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은 댓글에 큰 영향을 받는 연예인이나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한 말이다. 그 대상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더라도 최소 기자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다. 기자에게 댓글은 비즈니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자들에게 댓글은 자기 기사에 대한 ‘피드백’이다. ‘독자의 편지’다. 업무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 물론 댓글에는 거친 표현들이 많다. 댓글의 바다는 책임감 없이 내뱉은 대중의 배설물로 가득하다. 일부 언론인들이 댓글보기 거부를 선언하는 이유 또한 이런 ‘배설물’들 때문이다. 무차별적인 언어적 배설로부터 언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댓글에 배설만 있는가? 아니다.

새로운 기사 소재를 제공하는 역할, 기사 오류를 정정하는 역할, 수많은 댓글들의 카오스적 향연 속에 정립된 코스모스적 민심의 향배를 보여주는 역할까지 한다. 댓글의 순기능이 없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댓글에 대해 “초등학생들이나 다는 것”, “무시해도 될 만한 잡설” 등으로 치부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인터넷 언론이 막 시작되던 초기에 형성된 댓글관을 버리지 못한 경우다.

그러나 오늘날 댓글의 수준과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의사, 판사, 박사 등 각계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 기사에 직접 댓글을 다는 세상이다.

모 경제지 선배 기자가 댓글을 읽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만했고 부족했는지 깨달았다”며 각고의 노력 끝에 ‘매니아’들도 인정하는 IT 전문기자로 거듭난 일화는 유명하다. 기자 타이틀을 떼고 전문가 수준의 블로그 운영에 나선 그는 미국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를 한국에서 밤새 뜬눈으로 지켜보며 실시간 기사로 처리해 ‘매니아’층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그밖에도 이제 다수의 기자들이 오늘 자기 기사에 댓글이 몇백개 달렸는지로 승부한다. 이런 모습은 신참 기자, 고참 기자를 막론하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아직까지 댓글 거부를 선언하며 ‘독자의 편지’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언론인 또한 존재한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은 조선닷컴 사이트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칼럼에 댓글 기능을 허용하지 않는 언론인이다. 1965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언론계의 산 증인인 그가 댓글을 거부하는 현상은 언론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일까, 아니면 시대에 대한 역행일까.

1974년 언론계에 입문한 소설가 김훈씨는 지난 7일 자신의 신간을 펴내며 “우리 (한국) 사회 70년의 유구한 전통은 갑질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1970~80년대에 한국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안다.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뉴미디어 과도기 시대, 이 시대 언론인의 댓글 거부는 언론의 마지막 자존심 지키기인가, 아니면 마지막 갑질인가. soo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