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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38년전 그리고 지금, 공연티켓 숙제
며칠전 외식을 했는데,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말한다.

“아빠, 뮤지컬 공연 봐야해.” “응?”

“뮤지컬 보고 공연티켓 제출하래. 음악 숙제야.”

“그럼 봐야지. 뭘 볼까?”

돼지갈비가 구워지는 사이, 우리 가족은 휴대폰을 통해 뮤지컬 공연 하나를 예약했다. VIP 좌석 대신 비교적 저렴한 좌석을 택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낸 과정이 궁금했다.

“뮤지컬은 비싼 축이야.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 말 안했어?” “응. 어떤 아이들은 티켓 값이 비싸 부담이 된다고 하긴 했어. 선생님은 대학로 공연 등 값싼 곳도 있으니까 아무 뮤지컬이면 된다고 하셨어.”

“선생님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시겠지. 아이들이 공부만 한답시고 음악적 소양이 모자라니까 그런 특단책(?)을 쓰시나 보다.” 아이 앞이라 그렇게 말했고, 공연 티겟 문제는 그렇게 정리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자연스럽게 기억이 떠오른다. 38년전, 내가 중학생때도 그랬다. 미술 선생님이 계셨는데, 엄격하셨다. 미술이 아이들 미래와 창의성에 직결된다는 훌륭한 철학을 가진 분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수업은 가끔 버거웠다. 미술 전회시를 간 후 티켓을 제출하라는 숙제를 자주 냈다. 화가나 작품을 달달 외워서 시험 치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시회 현장에서 생생한 감동과 영감을 얻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미술교육이라는 뜻이었을 게다. 옳다.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대전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등록금을 못내기 일쑤였고, 차비도 없어 먼길을 터벅터벅 걸어다녔다. 그러니 전시회 갈 돈이 있었겠는가. 물론 대전시 문화회관 등에서의 전시회 관람 값은 싼 편이었지만, 어찌보면 당시 나로선 미술 작품을 보려고 전시회에 가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가끔 부유한 친구한테 티켓 한장을 얻어 숙제로 내곤 했지만, 티켓 때문에 미술 수업을 받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술의 ‘미’자에도 관심이 없는 중학교 머슴애들을 그렇게 해서라도 예술에 ‘입문’시키려는 선의(善意)가 더 컸다고 보기에 가난한 내 현실에 씁쓸했을 뿐, 선생님을 탓한 적은 없다.

대선이 일주일 남았다. 재벌개혁, 기초연금, 최저임금, 육아휴직 등 후보 캠프에선 굵직한 정책들이 지금도 쏟아진다. 하나라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들이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이 마지막까지 문화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문화ㆍ예술계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이번 대선에서 문화ㆍ예술 정책 중 눈에 띄는 공약이 없다고들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워낙 파장이 컸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후폭풍을 실감한 탓에 세부공약에 신경쓸 틈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직결되는 문화정책은 분명 가볍게 여길 이슈는 아니다. 문화ㆍ예술과 관련한 학교 교육 역시 진정 ‘백년대계’의 기틀이다.

내 은사와 딸아이 선생님의 ‘티켓 첨부 숙제’, 38년전과 현재의 동일반복 현상은 어찌보면 문화예술 정책의 답보가 낳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바꾸자. 바꿔야 한다. 문화예술 정책이 진화해야 아이들 미래가 있다. 정책 분발을 주문한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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