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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의 갈라파고스’의 가려진 역사
일본 내 식민지로서의 군도 조명
노마드의 터에 침략의 징검돌로
센카쿠, 댜오위다이 등 분쟁의
뿌리와 근대 이해의 새로운 틀 제공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1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오가사와라 군도는 일본 본토에서 1000km나 떨어진 서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군도로 ‘동양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자연의 보고, 태평양의 낙원이란 이미지와 달리 섬은 반세기 넘게 주민들에겐 돌아가지 못하는 버림받은 곳이다.

도쿄에서 배로 25시간 걸리는 이 곳은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그런데 19세기 세계화의 열풍을 타고 고래기름을 찾아 서북태평양으로 진출한 포경선들의 기항지가 되면서 배에서 탈출한 이들과 표류자, 해적 등이 체류하거나 정착, 독특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1만명을 넘지 않는 작은 군도에 거대한 역사적 공간적 배경이 구축된 것이다. 
그런 ‘바다의 노마드‘의 터, 군도는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냉전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총력전 때는 주민 대다수가 본토로 강제 소개되거나 전장으로 징용되고, 전쟁 후엔 미군기지로, 포스트 냉전 시기에는 방임된 채 버려진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 사람들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시하라 슌 메이지가쿠인대 사회학부 교수는 ’군도의 역사사회학‘(글항아리)에서 군도는 국내 식민지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책은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를 중심으로 서북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의 눈으로 태평양 세계의 200년 역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새롭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팽창에 따라 세계화에 편입된 섬의 근대화를 역사사회학적으로 들여다 본 것이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는 1944년 미국과의 지상전을 계획하던 일본군에 의해 본토로 강제 소개되고 섬은 미군에 점령된다. 패전 이후에도 이들 주민은 돌아가지 못하다가 1968년이 돼서야 시정권이 일본에 반환되면서 오가사와라 제도의 일본계 주민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지만 이오 섬 주민은 계속 귀향이 허락되지 않아 70년째 디아스포라 상태다. .

저자가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의 주민과 자손을 인터뷰해 상세하게 보고한 태평양전쟁 말기 이들의 피해사례는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공습 때 방공호 바깥에서 ’인간 방패‘로 몰아세워지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독한 학대를 당하는가하면 스파이로 내몰려 목숨을 잃었다. 삶터를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건 다반사였다. 일본 경제가 냉전 질서 속에서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피폭과 방사능 오염 등으로 신음해야 했다.

저자는 섬들의 역사를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군도의 역사는 진기한 에피소드나 변방의 시례로 일반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삶을 구축하고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이들의 경험을 전체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얘기다. 그래야 근대가 남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오늘날 편협한 역사의식을 ‘냉전 갈라파고스’라는 말로 표현한다. 현재 일본은 20세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냉전 갈라파고스의 꿈에 사로잡혀 편협한 인종주의와 국가주의로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영토 분쟁으로 치닫는 태평양의 센카쿠와 댜오위다오, 남 쿠릴과 미나미 치시마 군도 등 군도를 둘러싼 갈등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이를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함께 패전 처리에 있어 일본의 큰 역사적 과오의 하나로 제시한다.

태평양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과 일본이 누린 특권적 지위, 동아시아와의 미묘한 관계를 군도를 중심으로 살펴본 흥미로운 책이다.

/meelee@herak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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