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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가격, 시장 거스르면 동티난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집권 시절인 1791년, 심각한 흉년이 들어 한양에는 쌀이 매우 부족해 가격이 치솟는 사태가 벌어졌다. 백성들의 불만은 거세졌고,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쌀 가격을 통제해 달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자 당시 연암 박지원 선생은 정반대의 주장을 하며 가격통제를 반대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한양에서 쌀값이 높다는 소식에 전국 상인들이 쌀을 가져와 팔고자 하는데, 이런 와중에 쌀 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통제한다면 상인들은 장차 쌀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 팔 것이며 한양에는 쌀이 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연암은 시장가격의 자율적 통제 기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정조는 연암의 주장을 따라 한양의 식량 문제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정치인이 가격에 무지한 것은 200년 전 연암 박지원이 쌀 폭리를 처벌하려는 정조를 말리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신용카드 수수료, 치킨값에 이어 통신요금, 실손보험료까지 ‘보이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 정부가 서비스 요금을 싹둑 잘라내는 모습은 액션 장면처럼 통쾌하다. 그러나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아 마냥 손뼉칠 일이 아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MB의 한마디로 시작된 알뜰 주요소는 세금 인하 없이 이뤄진 탓에 2800여 개 주요소가 휴업하거나 폐업했다. 노무현 정부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며 세금 폭탄을 투하했지만 버블세븐 논란 속에 되레 서울 아파트 값이 57%나 치솟았다.

연암 박지원이 설파했듯 가격은 몽둥이로 잡는 게 아니라 경쟁으로 잡아야 한다. 시장 참여자 수를 늘려 회사들이 박 터지게 경쟁하고 가격ㆍ 품질ㆍ 서비스를 혁신하도록 돕는 게 최선이다. 통신시장은 그래서 제4이동통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또 경쟁지양적인 단통법과 요금인가제도 손봐야 할 것이다.

실손보험료 인하도 전제가 한참 잘못됐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면 보험사의 실손보험 지출이 감소할 것으로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실손보험 보장 항목이 줄어드는 대신 다른 비급여 항목 치료가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이어서 많게는 70배까지 차이가 나는 현실을 먼저 개선하지 않고는 실손보험 적자 구조를 돌려놓기 요원하다.

자동차보험은 적게 타고, 안전 운전하는 ‘착한 고객’을 선별해 최대 40% 할인 혜택을 주는 식으로 자연스레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 앞으로 핀테크가 접목되면 착한 고객 할인폭은 지금 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소비자는 가격이 내려가서 좋고 보험사는 손해율이 떨어져서 좋은 상생의 구조가 가능하다. 실손보험도 비급여 진료코드 표준화 등 과잉진료를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해 보험료 누수를 막고 의료쇼핑을 남발하지 않는 착한 고객에게 혜택을 더 주는 방향으로 경쟁환경이 조성된다면 고객과 보험사가 윈­­­­­­­­윈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과감한 경쟁을 통해 창의와 혁신을 발휘하도록 정부가 판을 깔아주는 게 부작용 없이 가격을 통제하는 유일한 길이다. m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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