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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블라인드 채용, 그리고 Affirmative Action
#. “정말 좁은 문인 취업에서 큰 문제는 학력이나 첫인상 위주로 평가하는 채용방식이다.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이유조차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실력을 겨룰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

올 2월 당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올린 ‘주간 문재인’ 네 번째 영상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선 “똑같은 조건과 출발선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블라인드 채용을 채근했다. 그로부터 보름여도 지나지 않아 고용노동부ㆍ기획재정부ㆍ행정자치부 등 관계부처는 ‘평등한 기회ㆍ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 “두 사람이 100야드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한 사람의 다리는 묶어 놓았다고 치자. 이 사람이 10야드밖에 못 가는 동안 멀쩡한 사람은 50야드를 갔다. 이 순간 불공정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냥 묶은 것만 풀어주면 될까. 그보다는 묶인 사람에게 40야드의 차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정의가 아닐까.”

미국에서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처음으로 법제화한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이 1966년 한 연설이다.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는 법(일명 ‘짐 크로우’ 법)이 “분리되었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합헌 판결(1896년 미국 연방법원)을 받았던 미국의 당시 상황에선 놀랄만한 연설이다. 요지는 기회의 균등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게다. 결과까지도 균등해질 수 있는 적극적인 평등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인 셈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놓고 벌써부터 찬반이 갈린다. 한 쪽에선 학맥과 인맥과 날줄과 씨줄처럼 한 데 뒤엉키고, 여기에 ‘인서울’ 중심의 정책이 범벅이된 적폐(積弊)를 없애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능력과 상관없이 출발선이 어디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평등 구조의 사회에 대한 반성문인 셈이다.

다른 켠에선 ‘공정한 경쟁’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며서도 또 다른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채용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가 한 그릇에 담기다 보니 서울 강남 출신의 지역대 학생이 전남 출신의 인서울 학생보다 우대받는 모순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돈 없고 뒷배가 없더라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계층 이동 사다리를 탈 수 있겠지하는 일말의 희망도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자조도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오늘도 취업 전선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엇갈린다. “이제는 바뀌겠지”하는 기대감과 “지금까지 애써온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나”하는 당혹감이 교차한다.

‘평등한 출발’은 응당 상식이 돼야 한다. 하지만 왜곡된 사회구조에서, 비상식이 마치 상식인냥 행세하는 사회에서, 빚의 대물림 구조 속에 비명을 지르는 사회에선 ‘평등한 출발’은 99%가 부족하다. 채용방법이 바뀌니 ‘평등한 출발’이 ‘균등한 결과’도 얻을 수 있다고? 아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80%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평등한 출발’, 그리고 결과의 균등까지도 생각하는 정교한 작전만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에 웃으며 화답할 수 있다. hani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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