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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흐를 한다는 건 연주자에겐 공포죠”
-‘클래식 외교관’ 첼리스트 양성원
‘바흐: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 발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첼리스트들에겐 ‘구약성서’로 통해
-순수 연주시간만 2시간 40분 달해
여섯곡 한번에 듣기 관객에게도 ‘도전’


“사람들이 다 아는 곡을 한다는 건 완전히 발가벗고 무대에 서는 거죠”

올해로 지천명(知天命), 첼리스트로 43년을 살아온 연주자 양성원에게 바흐는 “위대한 음악가를 넘어선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읽힌다. 그런 그가 최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새로 녹음해 최근 음반을 냈다. 2005년 EMI음반 이후 12년만이다. 29일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성원은 “모든 연주가에게 바흐를 한다는 건 공포”라면서도 “제 나름의 삶의 결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201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 훈장 슈발리에를 수여받고, 영국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 오브 뮤직(RAM)의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외교관’이다. 그가 최근 ‘첼리스트들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을 발매했다. [제공=유니버설뮤직]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리스트들에겐 ‘구약성서’로 통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곡이다.

“바흐는 ‘투명’하기 때문에 연주자의 음악적 이해도를 단숨에 꿰뚫어보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콩쿠르에서 바흐를 요구하는 거죠. 많은 사람이 바흐를 두려워 하지만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투명하다’는 건 깊이가 있어야만, 그리고 디테일이 기가 막히게 정교해야만 가능한 영역입니다”

이렇게 연주자 자신을 전부 드러내야하는 바흐에 (그것도 전곡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건 불과 4~5년전이다. “이제 바흐를 들으면 인류에게 내려오는 문화예술 유산을 보는 느낌입니다. 20대엔 전곡을 다 할 자신이 없었죠. 최근에 와서야 몸으로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흐는 부담이다. ‘투명’한 바흐를 연주하기 위해선 심리적 준비도 필요하다. 그는 연주 전날엔 전화도 끊고 종일 명상하는 상태로 들어간다.

이번 앨범은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봉스쿠르 성당에서 녹음됐다. 당시 성당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기위해 사운드 믹싱 등 후작업을 거의 하지 않은게 특징이다. 잡음을 제외하고 깔끔하게 악기 소리만 담아내는 최근의 앨범 스타일과는 차이를 보인다. 양성원은 “그날, 그 장소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고싶었습니다. 믹싱은 눈곱만큼도 없고, 성당의 일상적인 잡음, 나무가 움직이는 소리 등 자연스럽게 남기려고 했습니다”고 설명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장 도움을 많이 준 건 20년째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내(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죠. 어떤 색채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한 음 한 음 질문을 던지고 깊이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그걸 아무한테나 물어볼 순 없으니까요. 아내는 한없이 제 음악을 들어주고 질문에 답해줍니다”

연세대 교수이자 영국 로열아카데미오브뮤직 초빙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연주자로 활동도 이어가는 그에게 연습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평생의 숙제다. “나이가 들수록 연습을 더 많이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큰일입니다. 다행히 잠이 줄어 새벽연습을 많이 하지요. 연습이 쉽지는 않지요. 다만 음표 하나 하나 ‘음의 색채’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빠는 온종일 첼로 앞에 앉아있는 게 외롭지 않냐’고 묻더군요.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알았다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겠죠. 그러나 인간이 청각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색이 점점 다양해지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데서 차라리 축복을 느낍니다”

양성원은 이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발매를 기념해 부산 영화의전당(9월10일), 인천 엘림아트센터(23일), 여수 예울마루 대극장(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10월15일) 등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중간중간 프랑스와 일본에서의 공연도 있다. 인터미션 시간 40분을 제외하고 순수한 연주 시간만 2시간 40분에 달한다. “연주시간 내내 악보에 집중할 수 있을지, 곡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음 색채를 표현해 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솔직히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요” 한 곡과 전곡의 차이는 그만큼 크다.

연주자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도전’인 셈이다. “여섯 곡을 한 번에 듣는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쉬운 것 만큼 지루 한 것도 없지 않나요. 도전 후 이뤄낸 성취감과 희열이 우리에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주고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된다고 봅니다. 몇 세기를 통하면서도 살아남은 이 불멸의 명곡을 듣는다는 건 우리 몸에 각인되는 경험입니다. 10년뒤에도 남아 삶에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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