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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재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웃기려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네.” 한때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성차별적 발언이나 외모지상주의 혹은 과도한 가학성 같은 걸 비판하면, 어김없이 붙는 댓글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표현으로 “예능을 다큐로 받네”라는 말도 있고, 젊은 세대들은 지나친 진지함을 드러내면 ‘진지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때 한 토크쇼에서는 아예 출연자들이 나서서 “예능은 예능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말을 유행어처럼 외친 적도 있다.

실제로 개그맨들을 만나면 종종 우리 사회가 “사람 웃기기 어려운 사회”라고 토로하곤 한다. 그만큼 뭘 하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는 거다. 물론 개그맨들의 이런 토로가 ‘풍자’ 같은 것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연 성차별이나 외모지상주의, 가학성 같은 걸 포함한 웃음은 왜 안 되느냐고 묻는 거라면 어떨까. 고개가 갸웃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들이 더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공간은 SNS나 인터넷 게시판이다. 어쩐지 우리는 그 인터넷이라는 가면의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착각을 갖는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타자에 대한 혐오적 발언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그리고 그 혐오적 발언들 속에도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건 ‘웃음과 유머’의 코드다.

때론 지나친 발언들이 나와 어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우린 거기 담겨진 웃음과 유머 코드를 읽어내며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기에 깔려 있는 정서는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자리해왔던 “웃기면 된다” 혹은 “재밌으면 된다”는 식의 웃음과 재미에 대한 강박이다.

그렇다면 과연 재밌으면 모든 게 허용되어야 하는 걸까. 그것은 ‘표현의 자유’일 뿐인 걸까. 그러니 이를 잘못된 일이라 비판하면 오히려 지나친 진지함이라고 비판받아야 마땅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재미를 위해 모든 것이 허용될 수는 없는 일이고, 그것도 눈앞에 버젓이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것을 허용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인터넷 같은 공유의 공간을 우리가 갖게 된 이상, 이제 어떤 잘못된 표현은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이 집단적인 형태를 띠게 되면 우리가 흔히 ‘마녀사냥’이라고 말하듯 그 폭력의 양상은 일파만파 커지고 그 여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피해자도 생겨난다.

물론 이처럼 재미와 웃음에는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생각은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그 증거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도 역시 방송이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을 주기 위해 갖가지 센 발언들과 독한 상황들을 만들어내지만 대중들은 어쩐지 불편하다는 반응이 더 많고, 어떤 예능은 웃음에 대한 강박 자체가 없고 그저 담담히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중들의 열광을 얻어낸다. 예능에서 이미 웃음이 전부라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다. 재미를 추구하는 건 맞지만 그 재미의 차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다. 그래서 요즘 예능은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주거나, 인문학이 주는 지적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때론 불편함을 꼬집는 사이다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재밌으면 된다”는 생각은 그래서 이제 대중들의 ‘재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깨지고 있다. 재미에도 좋은 재미가 있고 나쁜 재미도 있으며 이상한 재미도 있다. 그것을 똑같은 재미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 그것이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의도치 않은 피해들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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