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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로 떠난 간호사 ‘명자’씨는 왜 돌아오지 않았나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김재엽 연출, 실제 독일 베를린 머물며
재독 간호사 세계 시민으로의 성장과정
獨출신 배우들 실감나는 대사 현실감 더해
12월 3일까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60년대 비행기를 타는 것만으로도 ‘출세’했다고 박수받던 때, 독일로 떠난 한국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당시 한국 정부가 외화를 벌기 위해 실시한 노동정책의 일환으로 독일로 파견했다고 알려진 간호사들. ‘독일행’을 택한 이들의 동기는 경제적 이유가 대부분이었으나 이외에도 학업, 해외여행, 동경심 등으로 다양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40년 전 독일로 떠난 한국 여성들이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들의 삶을 담은 역사책이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2014)’ 등을 통해 알려졌는데 당시 남성들은 광부로, 여성들은 간호사로 일하며 독일 사회에 뿌리내린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40년 전 독일로 떠난 한국 여성들이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극본을 직접 쓰고 연출한 김재엽은 2015년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 1년간 실제로 생활하며 이주민의 삶을 직접 마주하고 느낀 바를 작품에 녹여냈다. 김 연출은 독일에서의 경험을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 베를린 코멘터리’라는 제목의 시리즈 연극으로 만들었다. 지난 5월 연극 ‘생각은 자유’를 첫 번째로 올렸고 예술의전당과 손잡고 이번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를 무대에 올렸으며, 마지막 작품은 아직 작업 중이다.

김 연출은 ‘간호사’를 뜻하는 독일어(Krankenschwester) 단어를 ‘병동소녀’로 의역했으며 ‘독일로 떠난 간호사들은 왜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궁금증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그가 베를린에 머물면서 만난 한국계 이주민 여성의 생을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과 드라마적 요소를 버무려 극본을 완성했다.

극은 1966년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던 ‘명자’ ‘순옥’ ‘국희’가 독일에 당도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 전혀 다른 생을 살던 세 여성은 독일에서 간호사로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독일 사회에 적응해간다. 그 무렵 정치학을 공부하는 ‘정민’ 역시 독일 유학 생활에 돌입하고, 이주민 개인 역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세 사람을 만난다.


정민의 논문을 계기로 돈독해진 넷은 역사의 현장에서 때로는 당사자가, 때로는 목격자가 된다. 당초 3년 근무 계약과 달리 한국 대신 독일을 택한 이들은 삶을 이어가지만, 1973년 국제 석유파동으로 인해 독일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계약 연장을 중단하자 추방 위기에 놓인다. 이에 힘을 모아 ‘체류권 허가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이끌어내 아시아 간호여성의 체류권을 획득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결과 ‘재독한국여성모임’을 조직하게 된 이들은 1980년 광주에서 5.18 민주항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도 크게 활약한다.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한국 내에서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최근 흥행한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등장하는 실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해온 광주의 처참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당시 성당의 신부님을 통해 한국에 전달해 진실을 알렸다. 이 모임은 현재까지도 세월호, 위안부, 핵무기 등 주요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회 운동을 벌이며 세계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재독 간호사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만든 극은 이들이 겪은 일을 무대 위에 충실히 재현한다.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에서 내한해 개막 당일 극장을 찾은 재독간호사 3명은 벅찬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보고 소감을 밝혔다. 


1966년 베를린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김순임 씨는 “당시 정부의 도움 하나 없이 우리의 자비로 갔기 때문에 ‘파독’이 아닌 ‘재독’ 간호사로 불리기를 바란다. 독일에 살면서 나 자신이 정치의 대상이 아닌 정치의 주체가 됐음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연출은 “한국 사람들이 베를린에 가면 장벽이 무너진 자리를 꼭 들른다고 알고 있다. 조국이 둘로 분단된 적 있는 독일인들과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러나 분단에 대한 생각은 베를린의 젊은 세대뿐 아니라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역시 크지 않다. 이미 통일된 혹은 분단된 사회에서 태어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에게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상상력이 생겨야만 경계와 벽을 허물고, 우리가 만든 국경이나 인종, 세대 같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향, 이영숙, 홍성경 등 주요 연극상에서 연기상을 받은 베테랑과 정원조, 이소영, 김원정 등 실력파, 윤안나와 필립 빈디쉬만 등 독일 출신 배우들이 출연해 실감 나는 독일어 대사로 극에 현실감을 더한다. 오는 12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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