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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포세대의 절망’과 겹치는 1960년대 미국
“지난 20년동안 폴 굿맨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미국 작가였다.(…)활자화된 종이 위에서 그는 지금까지 어떤 작가도 내지 못했던 친숙하면서 사랑스럽고, 화가 치밀어오른 듯한 그런 진짜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지성, 수전 손택은 폴 굿맨의 직설적인 목소리에 매료돼 평생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을 만큼 그의 모든 글을 좋아했다.


무명의 폴 굿맨을 유명하게 만든 출세작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는 1960년대 미국의 반항세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이 책은 폴 굿맨이 몇몇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다”며, 그들이 자기 존재를 낭비로 여기는 것을 보고 사회에 대한 실망감을 억누르지 못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 성장을 이끌며 중산층을 형성하고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우주로 위성을 쏘아올리는 등 표면적으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애국심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었다.

‘N포 세대’로 불리는 지금 한국의 상황과도 겹쳐지는 당시 청년문제를 폴 굿맨은 좀 다르게 바라봤다. 젊은 세대의 반항, 비행 청소년 범죄, 조직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는 것 모두를 시스템에 대한 반응으로 본 것이다. 비행 청소년의 경우, 어른들은 그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이를 통해 사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굿맨은 이 통념을 뒤집는다. 이들에게 ‘사회화’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아무 의미도, 쓸모도 지니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즉 청소년의 병리적 행위가 사회를 어지럽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병리가 청소년의 비행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이 사회가 소속감을 갖고 사회화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굿맨은 견고한 듯 보이는 사회 시스템이 실은 인간 본성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입장을 보인다. 조직화된 사회는 조직 내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도록 조장하거나 방임한다는 것.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역할을 수행할 뿐 발전도 퇴보도 없으며, 청소년이나 비트세대의 일탈 역시 종종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에 잘 적응한 사람이든 일탈자든 바보가 되는 건 마찬가지라는게 굿맨의 통찰이다.

굿맨은 개인이 ‘쓸모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 주목, 일자리의 질의 중요성과 함께 교육과 학교 개혁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그는 지금까지 교육이 어린아이들을 기존의 사회적 역할에 적응시키고 역할놀이에 순응하게 하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며,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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