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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응답하라! 나만의 10대 뉴스
“또 한 해가 가는 건가?”

열한 장을 뜯어내며 위태롭게 붙어 있는 달력 한 장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시기다.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공들여 본 탑이 잘 쌓아지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도 못했다.

승진을 하고, 1등을 하고, 수석(首席)을 한 주인공의 삶에 “좋아요, 멋져요”라고 댓글을 올리지만, 티 나는 상장 하나 없이 조연으로만 보낸 세월이 허망하고 나약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필자는 살아 낸 1년이 당장 빛나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않기를 조언한다.

2000번 넘는 실수 끝에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도 빛나는 마지막 성공 이전에는 그저 그렇거나, 뭘 해도 잘 되지 않던 수많은 세월을 겪지 않았을까.

365일 잦았던 실수도, 나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과 아픔도 ‘빛바랜 명작의 나’로 연마되는 시간임을 기억하기 바라며 올해 마지막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쓸모 있는 인생 정돈 이벤트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12년 전 “올해의 10대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건, ××사고, 참 힘든 일이 많은 한 해였군요”라고 아나운서가 호흡을 맞춰 안타까운 맞장구를 치자 어린 아들이 말했다. “올해는 해피 뉴스는 없었나 보네.”

가끔 어린이의 솔직한 질문은 통찰력 있는 신의 예정된 계시인양 우리가 사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이벤트를 떠올렸다. “각자 10대 뉴스를 적어서 발표해 볼까?” 매년 12월 31일 우리는 각자의 삶에 가장 행복했던 기사들을 적어 10대 뉴스를 발표했다. 세 명의 10대 뉴스가 모두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공통된 뉴스 거리는 한두 개에 불과했다. 필자에게는 대단하지 않았던 일이 남편과 아들에게는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중요하고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라.” 누군가의 명언을 현실로 이해하면서 우리는 조화로운 행복 공동체이자 든든한 파트너가 됐다.

그 중 아들의 한 뉴스가 떠오른다. 끝없는 재롱으로 가족에게 웃음을 줬던 강아지 행복이는 아들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동생이었다. 그러나 5살이 되던 해, 불치병으로 입원을 반복하다 결국 우리의 품을 떠났다.

방광에 힘이 빠져 허벅지에 소변을 내리쏟아도 따스한 심장이 살아있던 행복이의 마지막 숨결이 생생했기에, 우리 부부는 행복만 말하려던 10대 뉴스에 슬픔을 꺼내 열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은 행복이의 죽음을 자신의 10대 뉴스로 발표했다. 행복이의 삶 전체를 자신이 함께했기에 소중한 행복이의 죽음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들은 10대 뉴스를 발표하던 첫 해의 그날보다 한껏 성장해 있었다.

필자는 지금 플래너에 끼워진 11장의 10대 뉴스들을 훑어본다. 그리고 이들 뉴스가 지나간 과거 기억의 정돈만이 아닌, 한 살 더 먹는 삶의 필연적 내비게이션임을 깨닫는다. 자연재해로 구걸하듯 항공권을 구한 사건이 이듬해 낯선 여행지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지혜가 됐다. 10년 전 신문, 잡지에 시도한 칼럼 기고는 인생 첫 책을 출간할 수 있게 해 준 열정의 씨앗이 됐다.

돌아보니 나이를 먹어 가며 화려하지는 않아도 용서와 베풂이 많아지는 삶의 뉴스에 스스로 ‘잘 살고 있음’이라고 감사 상장을 보내 본다. 출근길 차 한 잔을 벗 삼아 나만의 10대 뉴스를 꼭 적어 보기 바란다. 소중하게 적어 둔 10개의 뉴스가 미래의 삶에 뿌리 깊은 꿈을 내릴 것이다.

필자도 아직 두 칸을 비운 채 미완성된 2017년 10대 뉴스를 기록 중이다. 좀 더 나은 두 칸을 채우기 위해, 12월 31일까지 설렘으로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 삶이 통째로 무덤에 들어가는 그날을 예견할 수 있다면, 플래너 뒷장 겹겹이 포개둔 수십 장의 10대 뉴스로 나만의 자서전을 들고 떠나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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