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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 한잔이면 언 몸이 뜨뜻”…혹한의 거리 노숙인들
서울 관리받는 노숙인 3241명
대부분 서울역·영등포역 집중
이중 10%인 291명은 거리숙식
종교단체 무료급식 찾아 전전
市, 477억 투입 겨울나기 지원


지난 10일 오후 7시께 서울 중구 봉래동2가 서울역파출소 옆 지하보도 인근. 보도 위엔 이모(55) 씨와 함께 노숙인 5~6명이 종이상자를 깔고 둘러앉아 막걸리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떡진 머리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검푸른 패딩으로 무장했고, 몇몇은 최근 급속도로 떨어진 온도를 의식한 듯 털모자와 목도리로 몸을 감싼 상태였다.

5년 넘게 노숙한 이 씨는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 노숙하다 지난 2014년 서울로 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장 큰 이유는 혹한이다.

남쪽이 따뜻하다고 해도 몸을 데울만한 공간이 마땅하지 않고, 복지 서비스도 비교적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씨가 칼바람을 뚫고 즐겨찾는 곳은 용산구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이다. 주변 교회에서 수시로 무료급식과 방한용품을 제공해서다.

그는 “더위도 문제지만, 추위는 생존과 연관돼 있는 만큼 상당수 노숙인은 여름보다 겨울을 두려워한다”며 “‘아직 안 얼어죽었느냐’가 안부 인사”라고 했다.

같은 시간대 서울역 지하철 6ㆍ7번 출구로 향하는 통로. 눈길이 닿는 곳마다 침낭과 종이상자가 보였다.

옆자리에 막걸리를 두고 침낭 속에서 코를 골며 잠든 노숙인도 눈에 들어왔다. 한 노숙인은 검은 패딩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추운듯 웅크린 채 조는 중이었다.

노숙 기간만 10년이 넘는다는 최모(53) 씨는 침낭을 들고 서울역 12번 출구 쪽에 비스듬히 누운 상태였다.

담뱃불을 달라며 말 문을 연 그는 “몸을 녹이게 1000원만 달라”고 했다.

어떻게 몸을 녹이느냐고 물어보니 옆에 있는 막걸리병을 가리켰다. 적은 돈으로 몸을 녹이기에 이만한 게 없다고 중얼댔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서울에는 모두 3241명 노숙자가 주요 지하철역 주변 등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이 중 291명(9.0%)은 인근 재활ㆍ요양시설에서 관리받는 노숙인(2950명ㆍ91.0%)이 아닌 거리 노숙인으로 분류된다. 서울역에만 125명 거리노숙인이 있고 이어 영등포역 63명, 시청ㆍ을지로역 31명, 용산역 28명, 기타 44명 등 퍼져있는 상황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나마 지난 2015년 3708명, 작년 3436명 등 매년 소폭 줄고는 있다”고 설명했다.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겨울철에 특히 지하철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풍부해서다.

서울역만 해도 근처 500m 안팎에 교회만 14~15곳에 이른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 만큼 바깥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도 온기가 유지되며, 지하라서 바람도 불지 않는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은 일대 쪽방촌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서울역 인근 동자동에는 쪽방 1169개, 영등포역 뒤편에는 쪽방 431개가 있다.

날이 추울수록 쪽방촌을 찾는 노숙인도 늘어난다. 3~6㎡ 쪽방의 1인당 하루 숙박비는 7000~8000원, 월세는 방에 따라 10만원 후반~20만원 초반 수준이다.

노숙인 이 씨는 “주로 구걸이나 막노동, 노숙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돈으로 숙박비를 번다”며 “서울시도 쪽방 같은 주거지를 제공하지만, 간섭받기 싫어 스스로 쪽방을 구하는 이가 상당수”라고 했다.

매년 한파가 이어지지만 최근 3년간 동사한 노숙인은 공식적으로 없다.

노숙인 최 씨는 “경찰과 공무원, 노숙인지원센터 직원 등이 수시로 순찰하며 상태를 확인하니 밤에 잘못되는 일은 잘 없다”며 “노숙인마다 구역도 정해져 있어 잠자리로 갈등을 빚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들의 겨울나기를 돕고자 내년 3월15일까지 잠자리 제공ㆍ구호물품 지원 등을 골자로 한 특별보호대책을 추진 중이다. 투입예산만 477억원이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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