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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한부 선고받은 병상에서 ‘삶의 증표’를 남기다
재일작가 곽덕준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 展

스물 셋, 한창 젊은 시절에 폐 한 쪽을 도려내고 병상에 3년을 누워있으며 그려낸 그림 이란걸 몰랐다면 그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960년대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세련된 화면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50년 시간의 더께를 읽을 수 있는 건 오직 바랜 물감의 색 뿐이었다.

재일작가 곽덕준(81)의 개인전 ‘1960년대 회화-살을 에는 듯한 시선’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10일부터 열리고 있다. 사진, 영상, 퍼포먼스로 유명한 현대미술작가 곽덕준의 회화적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살을 에는 듯한 시선 (A Piercing Gaze), 1968, 판넬에 석고, 호분, 수지, 수채, 아크릴, 162 x 132 cm
[제공=갤러리현대]

전시는 1964년부터 1969년까지 5년간의 작품에 집중한다. 회화 20점과 소묘 34점이 나왔다. 초기회화가 국내에서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곽 작가는 “1970년대는 컨셉츄얼한 시대였다. 1960년대 내 자신을 바라보며 만든 회화를 당시에 공개하면, 내 작품 세계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싶어 그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회화도 할 수 있는 작가라는 점을 나중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출품된 작품들은 ‘10년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상에서 ‘남은시간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삶의 증표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렸던 작품들이다. 흥미로운건 시간이 흐를수록 색감이 밝아진다는 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초기 작품은 와병중에 그린 것이라 어둡고 짙은 색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건강이 회복된 1967년 이후에는 희망이 강렬하고 화사한 색감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언뜻 프레스코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짝이는 자기질이 무척이나 독특하다. “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웠으나 서양기법이나 캔버스 작업은 배운적이 없다. 일본화를 기반으로 나만의 오브제 회화를 구현하고 싶었는데, 도자기 즉 세라믹 같은 질감을 구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도자기인가 아닌가를 고민한다면 내 의도와 일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판위에 석고와 호분으로 두꺼운 층의 요철을 만들어 채색하고, 목공용 본드로 코팅한 후 못으로 무수한 선을 긁어내길 반복해 제작했다.

곽덕준의 작업세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건 그의 ‘정체성’이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한국이다. 양 쪽 모두에서 ‘경계인’으로 살았던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아프게 확립했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신경이 곤두선 고양이’, ‘뿌리를 내리지 않고 꽃을 피운 식물’로 비유한 뒤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면 나만의 예술 행위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곽 작가의 다음 스텝은 여전히 현대미술의 정점에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이 표지로 실린 타임지와 거울에 비친 작가 자신의 모습을 결합한 ‘대통령과 곽’시리즈를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다음 작품은 ‘트럼프와 곽’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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