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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구례에서 가야계 무덤과 유물 확인…영호남 영향력
섬진강 일대 가야-백제 교류 증거 확인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순천, 장수, 남원, 함평 등지에 이어 전남 구례에서도 가야계 무덤고 유물이 확인됐다.

김해와 고령 등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을 주무대로 한 것으로 알려진 가야의 영향력이 영호남에 걸쳐 있음이 재확인 된 것이다. 최소한 백제와 긴밀한 교류를 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31일 구례군청(군수 서기동)과 재단법인 마한문화연구원(원장 조근우)이 조사하고 있는 ‘구례 용두리 고분’ 유적에서 가야계 토광묘(목곽묘, 목관묘) 3기와 가야계 토기, 청동기 시대 집자리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례 용두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목짧은단지, 목긴항아리,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등 대부분 가야계 토기이다. 이들 토기는 어느 특정한 시기와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아라가야계, 소가야계, 대가야계 등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구례 용두리 일대의 집단이 섬진강뿐만 아니라 내륙을 통해서도 가야 지역과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해 왔음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구례 용두리 고분은 1980년대부터 경작과 개간과정에서 가야계의 많은 유물이 수습되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번 조사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유적의 정확한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긴급 발굴조사이다. 지난 해 11월 조사를 시작해 올해 1월까지 조사를 진행했다.

유적은 섬진강과 가까운 용두마을 남쪽의 낮은 구릉(해발 45m)에 자리하며, 구례읍을 관통하는 서시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넓게 형성된 충적지의 단독 구릉에 해당한다. 용두마을의 강변에는 하동에서부터 섬진강을 드나들던 배를 매는 ‘배틀재’라고 지명과 함께 선착장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왔던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총 3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등고선과 나란하게 조성되었고, 묘광(墓壙)과 곽(관) 사이는 회색점토를 채워 넣었다.

3호묘는 구릉의 남사면부에 조성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중복되어 있으며 묘광의 규모는 길이 330㎝, 너비 130㎝, 깊이 20㎝이고, 그 내부의 목곽은 길이 280㎝, 너비 80㎝다.

유물은 머리 쪽에 목짧은항아리, 손잡이잔, 바리모양토기, 가락바퀴, 쇠칼이 놓여 있었고, 발 근처에는 목짧은항아리, 굽다리접시 2점이 묻혀 있었다. 출토상태로 보아 목곽 내부에 안치했던 유물로 판단된다.


2호 토광묘는 3호와 바로 인접하여 나란하게 자리하였으며, 전체 묘광의 규모는 210㎝, 너비 74㎝, 깊이 18㎝이다. 3호 토광묘에 비해 규모가 작으나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하였고 묘광과 곽 사이에는 회색점토로 채워 넣은 점 등을 통해 축조방법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머리 쪽에 목짧은항아리와 굽다리단지를, 발쪽에 굽다리접시와 굽다리입선단지를 묻었다.

문화재청은 구례군과 함께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가야지역과 백제지역과의 교류관계를 밝히기 위해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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