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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는 오창언에게 ‘예정처럼’ 왔다 초당 옥수수 ‘새품종 도전’ 대성공…
누가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농부’가 되겠다고 하면, 도리어 주위에선 만류했다. 농부로 사는 어려움을 뼈아프게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오창언 씨에게 ‘농부의 길’은 도착 예정지처럼 다가왔다.

일부러 농고로 진학해 한국농수산대학 특용작물과를 지원했다. 지난해 2월 졸업한 뒤 ‘청년 농부’로의 삶이 시작됐다. 부모님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일찌감치 독립했다. 임대한 4000평 밭에서 초당 옥수수와 주키니 호박, ‘인디언 감자’로 불리는 아피오스 농사를 지었다. 최근엔 대출을 받아 땅을 구입했다. “1500평 정도인데요. 노란색 사과인 시나노골드를 심을 예정이에요. 억 소리나게 빌려서 사놓으니 불안한 마음이 크죠. (웃음)”

내린천휴게소에서 판매한 오창언 씨의 초당 옥수수 [제공=오창언]

마트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품종의 작물이 오 씨의 손에서 재배된다. “아피오스를 심은 건 영양성분이 특별했기 때문이에요. 인디언 감자라고 하지만 감자는 아니고 콩과 식물이에요. 인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이 많아요.” 지난해 씨를 뿌린 아피오스는 꽁꽁 얼어붙은 강원도 인제의 땅 속에서 무사히 뿌리내리고 있다.

“아직 수확하진 않았어요. 종자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은 거예요. 농사로 밥을 먹고 살려면 자리를 잡기까진 최소 3년~5년은 기다려야 해요. 멀리 보고 하는 일이죠.”

잘 알려지지 않은 품종으로 농사를 짓는 일은 모험이다. 특히 시나노골드로 사과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주위에선 많이 먹는 ‘홍로’나 ‘부사’를 재배하라고 권했다. 정성 들여 농사를 지어봤자 사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오 씨가 새로운 품종에 도전한 것은 농부로서의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품종의 다양성을 늘리는 일은 농부가 해야할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농부는 자면서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잔다고 했어요. 종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선택의 다양성을 늘려가는 것이 농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제에서 초당 옥수수 농사를 지은 것도 오씨가 처음이다. 찰기가 없고 수분이 많아 아삭아삭 씹히는 데다 당도가 높아 생으로 먹을 수 있는 품종이다. 농사를 짓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년에 2000~3000평 규모로 초당옥수수 농사를 지었어요. 그런데 찰옥수수 농사를 짓듯이 심었더니 초당옥수수의 모양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애를 먹었죠.”

고생 끝에 수확한 초당 옥수수 판매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내린천 휴게소에서 하루 100만 원 어치씩 팔았다. 인스타그램엔 ‘백화점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는 후기도 올라왔다. 초당 옥수수를 사 간 고객 중엔 여배우 등 유명인들도 있다.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뿌듯해요. 이 일을 계기로 농사일에 희망을 보게 됐어요.”

초당 옥수수는 운이 좋았지만, 사실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판로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가을 수확한 오 씨의 주키니 호박은 한 박스에 1000~2000원까지 떨어졌다. “제 인건비는 커녕 자재값도 나오지 않는 거죠. 포장 박스 하나가 1000원이거든요.” 한여름 주키니 호박 한 박스는 6~7만원이다. 공급 양으로 인해 등락폭이 커지는 농산물 거래가격은 ‘눈치싸움’의 연속이다.

“결국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젠 온라인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오프라인에서 제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파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인제=고승희 기자/s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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