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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왕비의 인장 ‘내교인’은 어느때 찍었을까?
‘골목 여행지’ 통의동서 2점 발굴

추억의 골목길, 문화예술 도시재생의 산실, 세계화된 전통시장으로 국내외 여행자의 놀터가 되고 있는 서울 통의동에서 조선 시대 왕비의 인장인 내교인(內敎印) 2과(顆, 내교인 1과, 소내교인 1과)가 출토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교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중인 2과가 전부로, 발굴조사 중에 내교인이 출토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법인 수도문물연구원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1월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70번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얻은 성과이다. 


이번에 출토된 ‘내교인’은 2단으로 구성된 정사각형의 인신(印身) 위에 뒷다리는 구부리고 앞다리는 곧게 펴 정면을 보고 있는 동물(추정 ‘충견(忠犬)’)형상의 인뉴(印紐, 손잡이)가 있으며, 위로 솟은 꼬리와 목까지 늘어진 귀에는 세밀한 선으로 세부묘사가 되어 있다. 이 내교인보다 다소 크기가 작은 ‘소내교인’도 같은 형상인데, 동물의 고개는 정면이 아닌 약간 위를 향한 모습이다. ‘내교인’의 인장은 너비 4㎝×4㎝, 높이 5.5㎝이며, ‘소내교인’은 인장너비 2㎝×2㎝에 높이 2.9㎝이다.

인장들의 인면(印面)에는 각각 ‘내교(內敎)’라는 글자가 전서체로 새겨져 있는데, 조선왕조실록 영조 14년(1761년)의 기록을 통해 ‘내교인(內敎印)’은 조선 시대 왕비가 사용한 도장임을 알 수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 중인 명례궁봉하책(明禮宮捧下冊)과 명례궁상하책(明禮宮上下冊)에는 왕실재산을 관리했던 명례궁에서 관리하는 물품의 종류, 지출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이 적힌 본문에 먹으로 찍힌 ‘내교인’이라는 글자가 있어, 이를 통해 명례궁의 지출에 대한 검수가 왕비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조실록 98권(1761) 10월 22일자에는 ‘자전(慈殿)에는 자교(慈敎)가 있고 내전(內殿)에는 내교(內敎)라 일컬으며, 빈궁(嬪宮)에는 내령(內令)이라 일컫는다. 이에 만약 도서(圖署)하게 되면 세손빈에도 마땅히 그 표시가 있어야 하니, 내음(內音)이라고 하여 체제를 백자(白字)와 같이 하고 궤짝과 흑통(黑筒)을 갖추되 정원에서 만들어 들이게 하라’는 표현이 있다.

고종때 조선과 대한제국의 국새를 포함한 왕실 인사의 의례용 인장인 보인(寶印)과 훗날 맞추는 증표인 부신(符信)을 정리해 1902년(광무 6년) 무렵 간행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에는 ‘내교인’과 ‘소내교인’ 2과에 대한 도설(圖說), 크기와 재료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번에 통의동에서 출토된 내교인 2과와 그 조형적 특징이 매우 유사하여 주목된다. 이번에 내교인 2과가 발굴된 지역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 서쪽으로, 주변에는 조선 시대 관청인 사재감 터와 21대 왕 영조의 사가였던 창의궁 터가 인접해있다.

조사 결과, 조선 시대부터 근대기에 걸친 건물지 관련 유구 20여 개소와 도자기 조각, 기와 조각 등의 유물들도 확인되었다.

출토된 내교인장은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보존처리와 분석과정을 거쳐 유물의 성분과 주조기법 등에 대한 더욱 정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 후기부터 대한제국기의 왕실(황실)에서 사용된 인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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