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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한자어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한글사랑’ 입니다”
학생들 빈약한 어휘력에 개탄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 등 사전 삼형제 펴내…
중국내 소수민족에 한글보급도 추진 전광진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스승이 되고자 하면 ‘제자(弟子)’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제자’란 ‘여제여자’(如弟如子)라는 말에서 나온 겁니다. 나의 아우같기도 하고 자식 같기도 한 사람이 제자에요. 교수들이 학생을 제자로 여겼으면 미투 운동도 일어나질 않았겠죠.”

한 번은 한글운동단체가 한자를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냐며 ‘제자(弟子)’를 예로 들었다. ‘아우의 아들’이란 게 말이 돼냐는 거였다. 그러나 이는 ‘제자’란 말을 제대로 모르고 한 소리였다.

전광진(64)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이런 몰이해는 어휘력 부족, 즉 빈어증(貧語症)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어휘력 부족은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애국가’의 1절 중 ‘백두산’ ‘화려강산’ ‘보우하사’ 등 한자어 10개의 낱말 뜻을 적게 했더니 명문고 학생들의 평균이 30점이었다. 전 교수는 엄격히 채점하면 10점 밖에 안된다며 걱정했다. ‘재미 한국인 과학자’의 재미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대답한 학생은 5%에 불과했다. 대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영상세대들은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져 있어서 꼼꼼하게 읽지 않고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자사전이 빨리 들어가고 빨리 나온다면(Quick in Quick out), 한자어 뜻풀이가 돼 있는 국어사전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Slow in No out) 사전이에요. 분석해 나가면서 읽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죠.” 정희조 자/checho@heraldcorp.com

“빈어증은 암과 같아요.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늦어지면 손쓸 수 없죠.”

어휘력 빈곤은 초등학교 3학년때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교과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어휘가 달리는 학생은 점점 뒤쳐지게 된다. 그나마 이 때는 고칠 여지가 있다.

문제는 빈어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전 교수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을 그 이유로 든다.

“초등학교 교과서 18종을 조사했더니 한자어 출현 누적 빈도수가 23만 5천번으로 나타났어요. 한자어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어요. 한자를 노출하는 게 한글사랑에 반한다는 이유인데, 무책임한 겁니다.”

교과서가 발음 정보만 제공하고 의미정보는 없으니 학생들은 어딘가 다른 데서 말뜻을 따로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정부에서 교과서 한자 병기 여론이 있었지만 밀려났고, 다시 괄호 안에 설명을 넣어 표기하는 안이 추진됐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전 교수는 한글전용을 인정하되 이런 교육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초중교과 속뜻학습 국어사전’을 펴낸 이유다.

예를 들어, 신라 때 별을 관측하던 ‘첨성대’의 경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고적=경주 첨성대’라고만 표기돼 있다. 첨성대에 대한 아무런 의미정보가 없다. 반면 전 교수가 펴낸 속뜻사전은 첨성대(瞻星臺)의 한자를 표기한 뒤, 옆에 ‘볼 첨(瞻), 별 성(星), 돈대 대(臺)’ 라는 한자음과 뜻을 표기해 놓아 말 뜻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첨성대’란 말 속에 별을 관측해 본다는 힌트가 들어있는 것이다.

“한자어에는 주어진 힌트가 있는데, 이 힌트를 활용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죠. 예를 들어 한 쪽 눈을 감는다고 해서 안 보이는 건 아니죠. 두 눈을 사용하면 편하고 잘 보이는데 그렇다고 일부러 한 쪽 눈으로 보진 않잖아요.”

전 교수는 교과서 속뜻사전을 펴내기 3년 전, ‘우리말한자어 속뜻사전’을 펴냈다. 6만 단어다. 한자로 된 웬만한 수학용어도 다 들어있다.

그가 사전을 만들게 된 건 아이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연년생인 아들과 딸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등호가 뭐냐, 부등호가 무슨 뜻이냐, 형광등, 파충류가 뭐냐며 묻기 시작했다. 그는 사전이 답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사전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파충류(爬蟲類)’를 찾아봤더니, ‘파충강의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었다. 그는 더 난감해졌다. 대신 파충류의 한자를 풀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줬다. 파충류는 기어 다닐 파(爬), 벌레 충(蟲), 무리 류(類)로, 뱀 같이 기어 다니는 동물이라고. 아이들은 쉽게 이해했고, 그 일은 쉬운 한자어 사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그는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여섯 군데에서 퇴짜를 맞았다. 할 수 없이 아내 이름으로 1인출판사를 내걸고 사전을 펴냈다. 10년 고생 끝에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을 내놓은 건 2007년 개천절이었다. 그의 수중엔 1억5000만원 빚이 남았다.

그리고 3년 뒤, 다시 초등학생들을 위한 ‘초중교과 속뜻학습 국어사전’을 펴냈다. 고유어, 외래어를 포함해 3만자 가량을 담은 이 사전은 학교 교육에 답답해하던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아이가 사전을 읽으면서 어휘력이 늘고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들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에게도 인기다. 과학, 수학시간에도 이 국어사전을 펼쳐든다. 한자어 뜻풀이로 보면 용어가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에선 사전을 수업시간에 활용하면서 학생들의 글 쓰기 능력이 확 늘었다며, 반응이 뜨겁다.

함평군은 아예 초등학생 2200명에게 사전을 공짜로 보급했다. 선배들이 동창회에서 뜻을 모아 후배 고등학생들에게 사전을 선물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단어라는 건 일종의 벽돌이에요. 벽돌이 많아야 담을 튼튼하게 쌓을 수 있죠,”

그는 지난해부턴 ‘국어사전 꽃잎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전을 펴고 읽은 단어에 줄을 긋고 윗단에 색색의 스티커를 붙이는 거다. 한 페이지에 10개의 단어를 보았다면 10개의 색색의 스티커가 꼬리표처럼 달리게 된다. 그렇게 읽은 단어가 늘어날 수록 사전의 윗부분은 스티커가 불어나 꽃처럼 화려해진다.

이렇게 피어난 북플라워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종종 올라온다.

그는 오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어 1만7000개를 뽑아 보급용 사전을 펴낼 예정이다.

그가 사전읽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암기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이해 위주의 학습, 분석적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식의 빈익빈 부익부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전활용법 강의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다. 이미 100회를 넘었다.

중문학자가 국어사전을 펴내고 한자어를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자칫 한글학자들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한자어가 우리말의 60, 70%를 차지하는 현실은 비켜갈 수 없다. 한글사랑의 역설이다.

사실 한글세계화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주인공도 바로 전 교수다.

그는 말은 있어도 문자가 없어 생각을 글로 담아내지 못하는 소수민족에게 한글이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런 생각은 1991년 제리 노먼의 ‘중국언어학 총론’을 번역하면서 뚜렷해졌다. 노먼 교수는 언어와 문자의 적합성을 논하면서, 대표적인 문자의 예를 들었다. 알파벳은 200여종의 언어를 서사하는데 활용되고 있고, 아라비아 문자, 키릴 문자는 수십종의 언어를 서사하는데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수한 한글도 한국어 이외의 언어를 기록하는데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문자를 연구해온 그는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문자생활을 못하는 이들에 주목했다. 훈민정음이라는 자모체계를 활용해 이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길을 연구했다. 그 결과, 중국 로바족, 어원키족 등 몇몇 소수민족의 말을 한글로 표기하는 연구 논문 11편을 발표했다. 그는 씨를 뿌려놨으니 언젠가 꽃을 피우리란 희망을 갖고 있다. 문자생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한글도 훈민정음 창제 후 400~500년이 흐른 뒤 뿌리내렸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화제가 됐던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문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건 이례적인 일로, 정책적 지원 없이 흐지부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참다운 한글사랑은 문자생활을 못하는 민족에게 문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 교수는 학문의 길 보다 사회에 먼저 첫발을 내디뎠다. 경북 김천 성의상고를 졸업하고 1974년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신도 부러워한다는 직장이었다. 7년차 되던 해, 그는 야간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굴러다녔던 고서를 보고 동경해왔던 그는 한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과가 개설되지 않아 차선으로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갔다. 그런 선택엔 틈틈이 배운 서예공부도 한몫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그는 야간에 서예의 대가인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 문하에 들어가 글씨를 배웠다. 갑골문, 금문을 보면서 내용을 모르고 쓰기만 해서 되겠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학문의 여정은 목마른 만큼 흡수가 빨랐다.

문자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5년 졸업과 동시에 국립대만사범대학에 교환장학생으로 뽑혀 유학을 떠났다. 석사를 마치고 국립대만대에서 박사학위까지 5년만에 마쳤다. 티벳과 중국의 언어학적 조상이 같다는 한장어족이 그의 전공이다. 2010년엔 북경대학 중문과 대학원에 초빙받아 강의하기도 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좁은 연구실 창문 위에는 ‘황학산방(黃鶴山房)’이란 액자가 걸려 있다. 한문학자 이가원 선생이 써준 방 이름이다. 그의 고향 산 이름에서 따왔다. 그의 스승은 언젠가 한글전용의 안타까움을 드러낸 적이 있다. 한글전용은 한자를 알아야 더 유리하다는 거였다.

그는 그 말이 사전 편찬의 또 다른 중요한 동기가 됐다고 말한다.

전 교수의 한글사랑은 한자까지 포함한 사랑이다.

“표음문자하고 표의문자, 이 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죠. 표의문자만 사용하다가 표음문자도 사용할 수 있도록한 게 세종대왕의 선물입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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