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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한번쯤 부딪히는 종교…틸리히를 되새김하다
김경재 교수의 60년 신학순례 결정판
틸리히 ‘조직신학’ 50개 핵심 소주제로
종교란 무엇인가부터 계시·구원까지
세속화된 한국 종교 대안 제시


‘조직신학’의 대부이자 20세기 세계적인 신학자 폴 틸리히는 한국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인간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계시의 의미를 탐구한 그의 실존신학은 분단과 독재라는 한국적 특수성 속에서 빠르게 받아들여졌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60년 신학여정을 돌아본 신학순례기 ‘틸리히 신학 되새김’(대화출판사)을 펴냈다. 그의 순례의 시작점이자 목적지인 폴 틸리히 사상의 주요 개념과 물음을 되새김질한 책이다.

틸리히의 대표저서인 ‘조직신학’을 텍스트로 50개 핵심 소주제를 뽑은 뒤, 한국인이라는 자리에서 틸리히의 신학이 말하는 의미를 사유하고 자신의 안에서 소화해 ‘먹기 좋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했다.

“종교가 오늘날의 종교인들에게도 삶의 ‘액세서리’로 변질되거나 생활방편으로 전락되는 상황에서 틸리히의 “종교란 궁극적 관심이요, 그 궁극적 관심에 붙잡힌 상태이다”라는 통찰은 세속화된 한국 종교에 경종을 울리며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한다.”(‘틸리히 신학 되새김’에서)

모두 5부로 구성된 책은 먼저 틸리히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궁극적 관심’에서 시작한다. 즉 종교적 관심이란 어떤 성격의 관심인가를 정의한 것이다. 바꿔 말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구체적인 인간 활동과 견줘 ‘종교적 관심’이 갖는 특징을 밝힌 것이다.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의 자격에 부응하는 특징으로, ‘궁극적, 무제약적, 총체적, 무한적’이란 필요충분 조건을 제시한다. 따라서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는 대상을 궁극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추구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지만, 틸리히에 의하면 그 결과는 우상숭배요, 인간성 파괴요, 실존의 사람다움의 상실로 이어진다”.

틸리히에 따르면, ‘궁극적 관심’, 즉 종교는 일상생활에서 날마다 삶을 추동하고 의미와 가치 지향성으로서 작동해야 하는 것이지, 주일이나 종교 집회일처럼 특정한 날에만 인간 삶의 특별한 관심거리를 다루는 게 종교가 할 일이 아니다. 이는 ‘궁극적 관심’과 다르다.

저자는 틸리히가 왜 종교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전통적인 대답 대신 ‘궁극적 관심’이라는 말로 설명해려 했는지 공곰 생각했다며, 한마디로 말하면 “전통적인 종교학적 개념 규정이 현대인에게는 너무 관념적이고 비실존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틸리히는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실존적 물음과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 주어지는 신학적 대답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봤다. 이 ‘상관방법’은 틸리히의 또 다른 주요 개념이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 초월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입장과 달리, 인간이 인격적 주체인 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응답과 상호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개념은 지나치게 존재론적 신학체계라는 평을 받았지만 틸리히는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이해 가능한 신앙에서 길을 찾았다.


그렇다고 틸리히의 실존이 휴머니즘이나 철학 선상에 놓이는 건 아니다. 틸리히는 인간은 실존 그 자체의 모순과 역설 때문에 창조 능력은 없으며, 구원은 치유와 영이신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봤다. 인간은 절대로 창조주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고등동물도 아니며, ‘신의 암호’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과 계시, 신앙이란 서로 갈등하는 개념도 틸리히는 한데 아울러낸다.

틸리히는 이성을 보편적 이성, 직관적 이성, 실천적 이성, 기술적 이성 등 넷으로 구분했다. 보편적 이성은 존재하는 것들 안에 내재하는 보편적 원리, 실재 안에 선험적으로 있는 합리적 구조, 질서를 이른다. 직관적 이성은 질서와 구조의 핵심 본질을 직접 꿰뚫어내는 능력이며, 실천적 이성은 사물의 질서와 사회적 공의를 위한 실천적 행위, 기술적 이성은 과학기술문명을 이루게 한 능력을 이른다. 틸리히는 계시를 정보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건적 체험, ‘황홀한 이성의 상태’로 본다. 황홀 상태라도 이성의 합리적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잡신의 빙의적인 황홀과 구별된다. 비윤리적인 인신 공여 의식이나 자해 행위, 집단 혼음이나 광신 상태 등과 다르다. 즉 인식론적, 도덕 윤리적, 감정적으로 ‘합리적 구조 질서’가 파괴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특별한 체험이 계시라는 설명이다

인간정신과 함께 신적인 밝음이 함께 존재하는 게 틸리히의 이성이다. 그래서 이성은 영원을 목말라하며 그것을 찾고 묻는다. 틸리히는 실존상황에서 인간이 당면한 이성의 불안정성, 상대성, 자기분열, 자기모순을 극복하려면, ‘계시’에 의해 새로워져야 한다고 봤다. “그 때 이성은 ‘황홀한 이성’이 되지만, 이성이 부정되거나 기능 정지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더욱더 명료해지고 책임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신앙과 이성, 피조물과 창조주, 인간 실존의 문제와 구원론, 생명과 성령 등 본질적인 물음에 하나하나 답한다.

신학책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김 교수의 되새김을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게 되는 종교와 신, 실존에 관한 의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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