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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작품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반발”
개념미술가 ‘에르빈 부름’ 첫 한국 개인전
양동이 쓰기·구멍난 서랍장에 머리박기 등
관객들 1분간 작가 지시따르면 ‘작품 완성’
우스꽝스럽지만 사랑·이혼 등 은유적 시사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가 한창이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자르디니 공원. 가장 안쪽에 위치한 국가관이던 오스트리아관은 관람객들의 핫 스팟이 됐다. 바로 거꾸로 선 25톤 트럭 때문. 이 트럭은 에르빈 부름(Erwin Wurmㆍ64)의 작품이었다. 관람객들은 옆에 설치된 계단을 따라 트럭 꼭대기에 올라가 공원은 물론 지중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작가는 그곳에 “조용히 서서 2017년의 지중해를 바라보라”고 지시문을 적었다. 관객들은 1분간 에르빈 부름의 ‘조각’이 되는 ‘1분 조각(원미닛 스컬쳐)’시리즈다.

오스트리아출신의 세계적 개념미술가 에르빈 부름의 첫 한국전이 현대카드 전시문화공간인 ‘스토리지’에서 열린다. 런던 테이트미술관과 협업을 통해 진행되는 이번 전시엔 에르빈 부름의 대표작인 ‘1분 조각’ 시리즈, 신작인 ‘팻 카(Fat Car)’, 2017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인 ‘바보들이 탄 배(Ships of Fools)’와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인 ‘1분 조각 사진’이 나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나의 작품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반발이다. 시적이고 유희적인 방식으로”라고 말했다.

확실히 그의 작품은 유머러스하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용품을 전시장에 놓고 그 옆에 지시문을 적어놓는 것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플라스틱 의자를 벽에 걸어놓고 팔을 끼고 있으라거나, 이동식 카라반 차량의 벽에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발을 내 놓고있으라거나,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서거나, 구멍난 서랍장에 머리를 박고 있으라는 식이다.

관객들은 그 지시문을 정확하게 그대로 따라하며,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된다. 관객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인 셈이다. 동시에, 그 1분이 지나면 작품이 사라지고 만다. 존재와 부재가 한 자리에 있는 ‘아이러니’는 부름 작품의 핵심요소다. “관객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내 지시를 정확히 따라하지 않으면 내 작품이 되지 않지요. 1분 동안 나는 완벽한 디렉터, 관객을 지배하는 겁니다(하하)”

겉모양이 우스꽝스럽다고 작품이 의미하는 바까지 가볍지는 않다. ‘1분 조각’시리즈는 21년전 탄생했다. 그 이후 작가는 107개의 버전을 만들었다. 사랑, 일, 여가, 이민, 어리석음 등 유럽사회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슈들이 주제다. 테이트 모던 컬렉션인 ‘사랑의 구성(Organization of Love)’은 결혼 혹은 동거로 두 명이 함께 살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한다. 두 명의 참여자로 완성되는 이 작품은 서로의 사이에 어떤 물체를 끼우고 서야한다. “각자 일을하고, 개인적 생활도 영위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해야하는 문제가 남는다. 최근 이혼율이 높아지는건 이런 둘의 삶에서 서로의 역할분담, 다시 말해 ‘사랑을 위한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가하면 ‘바보들이 탄 배’는 난민문제를 은유한다. “인류 역사는 조금씩 다른 영역으로 이주하면서 발전해왔다. 최근의 이주와 이민은 사회분쟁, 종교, 정치와 겹치며 심각한 이슈로 등극했다”

흥미로운건 부름의 작품이 미술시장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에르빈 부름의 작품 ‘1분 조각’시리즈가 엔카운터즈 섹션에서 소개됐다.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내 작품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콜렉션과는 거리가 먼 데, 갤러리쪽에선 이번 홍콩에서도 거래됐다고 전했다”

에르빈 부름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9월 9일까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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