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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투기자본 놀이터…기업 ‘방어장치’ 급하다
헤지펀드 등 경영권 침해 우려
미·일 시행중인 ‘차등의결권제’
신주인수선택권 ‘포이즌 필’ 등
금융전문가, 도입 필요성 주장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압박하면서, 차등의결권 제도, 포이즌필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 앞다퉈 도입 중인 기업 경영권 방어 장치를 국내에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영권 방어 장치로 인해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헤지펀드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기업의 경영권 방어는 궁극적으로 ‘고용 증대’ 측면에서도 중요한 만큼 이를 보장할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3면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ㆍ좁쌀)는 올해 안에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샤오미가 지난달 30일 홍콩증권거래소가 도입한 차등의결권 제도를 적용받는 첫 번째 사례 기업이 된다는 점이다.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은 31.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 제도의 혜택을 받아 절반 이상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투자기관 어느 곳의 간섭을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특정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1주 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 주로 창업자나 최대주주 등의 지분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한다.

홍콩증권거래소의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은 사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홍콩거래소는 과거 차등의결권 도입을 불허한 탓에 알리바바를 잃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애초 홍콩 상장을 고려했다가 경영권 방어가 보다 수월한 뉴욕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알리바바는 2014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다. 알리바바를 놓친 홍콩 거래소는 상장 규정을 변경해 서둘러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차등의결권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다. 알파벳 주식은 주당 1표의 의결권을 갖는 보통주 A형과 공동 창업자가 보유한 B형으로 나뉜다. B주에는 주당 10표의 의결권이 부여돼 있어 10배의 의결권을 갖는다.

국내에 없는 ‘포이즌필(Poison pill)’ 역시 선진 자본시장에선 활성화된 경영권 방어장치다. ‘포이즌 필’로 불리는 신주인수선택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으면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주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 포이즌 필을 도입해 적대적 인수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 유카이파와 리지오 판결에서 포이즌 필의 적법성을 재확인했고, 이후 소더비, 허츠, JC페니, 세이프웨이, 아메리칸어패럴 등 많은 미국 기업들이 포이즌 필을 도입ㆍ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7년 ‘불독소스 사건 판결’을 통해 신주예약권제도의 적대적 M&A 방어 기능을 처음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20대 국회 개원 후 지난 3월 말까지 발의된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 총 20건 가운데 경영권 제한 조치를 담은 발의안은 18건이고 경영권 보호장치 마련을 담은 발의안은 2건에 불과했다”며 “외국계 투기자본으로부터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 활용하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반 기업정서에 따른 영향으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도입이 무산되면서 국내 자본시장은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간섭에 쉽게 노출돼 있다”며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안정화된 경영권 아래에서 활발해 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은 자기주식을 사들이는 방법밖에 없다“며 ”차등의결권 등 방어장치를 갖춘 해외 기업들과 비교해 두께가 얇은 방패를 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갑질’의 프레임으로 오너경영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짙은데, 기업 성장과 고용증대를 중심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헌ㆍ최준선 기자/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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