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기술 더한 예술, 관객에 새 울림 전하다
초음파분무기로 얼굴 그리는 분수
심장박동에 맞춰 번쩍이는 전구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디시전…’展

현대미술 거장들 작품 한곳에
50년전 낡은 기술, 감동 선사
국립현대미술관 ‘E·A·T’ 展


기술과 예술의 만남은 ‘운명’일까.

호기심 많은 예술가들은 기술의 열렬한 추종자다. 그들은 기술을 통해 더 자유로운 예술을 꿈꾼다. 가끔은 기술의 원래 쓰임새와 전혀 다르게 예술적 성취를 이뤄내기도 한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것.

서울 주요 미술관 두 곳에서 기술과 예술이 만나 이같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전시가 진행중이다. 서울 용산구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개관 첫 기획전으로 멕시코 태생 작가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리스트(Decision Forest)’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기술과 예술의 만남’의 시조격인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을 개최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디시전 포리스트’=‘디시전 포리스트’는 대규모 인터렉티브 미디어 전시로, 상당히 대중친화적이다. 복잡한 AI(인공지능)나 알고리즘보다 키네틱 조각, 생체 측정 설치작품, 카메라, 사운드 환경, 프로젝터를 활용한 작업을 통해 관객을 끌어들이고, 관객의 참여로 전시가 완성된다.

전시엔 신작 5점을 포함한 26점이 나왔다. ‘페어아이들리엄(Pareidolium)’은 초음파 분무기를 사용한 분수다. 수백개 초음파 분무기가 차가운 증기를 내 뿜는데, 관객이 이 물 속을 들여다보면 앞의 카메라가 작동, 관객 얼굴 이미지를 추출해 증기로 그려낸다. 관객이 물속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작품이다. 그런가하면 ‘줌 파빌리온(Zoom Pavilion)’은 얼굴인식과 형태감지 알고리즘을 사용, 참여자들의 모습과 전시공간에서 이들의 관계를 기록한다. 카메라가 감시의 용도가 아닌 인간관계를 측정하는 기술로 쓰였다. 전시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인 ‘펄스 룸(Pulse Room)’은 인간의 심장 박동을 빛과 소리로 변환한 작업이다. 전시장 한켠의 센서스틱을 잡으면 관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하고, 그 박동에 맞춰 백열전구가 반짝인다. 260개의 백열전구는 260명의 데이터를 기록, 동시에 제각각의 리듬으로 고동친다.

로자노헤머는 “이전까지 관객들이 어떤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면 최근의 예술은 예술이 관객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고 감시하며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한다”며 “이것이 예술의 흐름”이라고 했다. 기술을 통해 인간과 예술이 비로소 상호작용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8월 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E.A.T.’=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선도한 협업체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가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196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예술가와 공학자의 협업체 ‘E.A.T.’의 주요 활동을 조명한다. 전시엔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머스 커닝햄, 존 케이지, 로버트 휘트먼 등 E.A.T.를 이끈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33점과 아카이브 100여점이 나왔다.

E.A.T는 1966년 미국의 팝아트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로버트 휘트먼, 벨 연구소의 공학자 빌리 클뤼버와 프레드 팔트하우어 등 예술가와 공학자가 예술과 기술 간의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때 회원이 6000명까지 늘어나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꿈꿨다.

전시는 ‘협업의 시대’, ‘E.A.T.의 설립’, ‘아홉 번의 밤:연극과 공학’, ‘확장된 상호작용’ 등 총 4개 섹션으로 이루어진 전시는 E.A.T.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총망라한다. 특히 두번째 섹션인 ‘E.A.T.의 설립’에서는 그들의 활동상을 자세히 소개한다. 냉각 장치를 갖춘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놓인 얼음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는 한스 하케의 ‘아이스 테이블’(1967), 레이저 기술을 활용한 로버트 휘트먼의 ‘붉은 직선’(1967) 등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장 뒤피의 ‘심장 박동 먼지:원뿔형의 피라미드’다. 관람객의 심장박동을 청진기로 포착, 그 박동에 따라 먼지처럼 쌓인 붉은 안료가 고동친다. 붉은 피가 용솟음 치는 것 같은 이 작품은 1968년 뒤피가 공학자 랠프 마르텔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50년전의 ‘낡은’기술을 활용한 작품이 현대의 관객에게도 울림을 주는건 E.A.T.가 추구했던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욱 진보할 현대사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A.T.가 추구했던 가치 중심엔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그들의 협업을 통해 이뤄질 신세계에 대한 비전이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융복합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