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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현장보다 명성(?)…혁신의 함정
바야흐로 혁신의 시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각 분야는 혁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완전히 새롭게 바꾼다’는 사전적 의미를 달성한다면 세상은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바뀌겠지만, 이상과 현실의 틈은 넓다. 혁신은 실패를 교훈 삼아 오랜 인내를 먹고 자란다.

아이폰으로 ‘혁신의 아이콘’이 된 고(故) 스티브 잡스도 실패의 쓴잔을 들었던 ‘흑역사’가 있다. 컴퓨터 마니아들이 애플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는 ‘리사’ 이야기다. 애플의 전매특허인 심미적인 감성은 제품이 출시된 1980년대에도 그대로였다. 간결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움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가격표가 붙자 ‘환상’은 ‘허상’이 됐다.

1만 불이라는 자비 없는 가격과 터무니없는 처리속도에 혹자는 리사를 ‘아름다운 쓰레기’라고 했다. 결국 팔리지 않은 2700대의 리사는 유타 주(州)에 매립됐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혁신을 ‘손에 잡히지 않는 한 걸음’이라고 표현했다. 25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국토부가 새롭게 내세운 혁신의 주인공은 건설산업이었다. 구(舊)시대적인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과 로봇, 드론 등 첨단기술을 연계해 생산의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청사진이었다.

김 장관은 조만간 발표할 건설산업혁신방안을 토대로 오는 7월에 노사정 합의를 이끌고 9월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한 걸음’을 강조했던 그가 성공을 자신하며 달릴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혁신의 뼈대를 세운 것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다. 지난해 초 대우조선 구조조정의 틀을 잡은 것도 맥킨지 보고서였다. ‘혁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외국계 컨설팅사 이름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외국의 성공 사례를 국내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업계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짐작했다. 하지만 ‘짐작’일 뿐이다. 국토부는 용역을 첩보작전을 펼치듯 비밀리에 진행했다. 국토부가 추진한 혁신위원회에도 분과별로 건설사가 한 곳씩, 본회의에는 규모별로 건설사 세 곳이 포함됐다. 용역비를 부담한 건설단체가 다수 참여한 것과 대비됐다. 그나마도 전체 혁신안의 큰 그림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대우조선을 분석한 ‘맥킨지 보고서’가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는 것과 꼭 닮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건설사 구조조정을 위한 살생부가 담겼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지도 없이 길을 가야하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철저하게 시장이 외면한 애플의 ‘리사’처럼 설계자 중심의 혁신은 환영받지 못한다. 건설산업혁신방안의 중심에 건설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반박할 수 없는 전제다. 협회가 업체의 입장을 대신하고 있지만, 건설현장의 현실을 오롯이 반영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꼭 혁신위에 참여시키지 않더라도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은 옳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대상을 고려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또는 울며겨자먹기식의 의미를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혁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가 성패의 중요한 척도로 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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