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 공연땐 160분간 몰입…끝난뒤엔 ‘리처드앓이’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3세 공연장면. [제공=LG아트센터]

다양한 재해석이 끊이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리처드 3세’는 한국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았다. 세계적인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 최근 그의 네 번째 내한이 있었다. 공연을 본 많은 관객들은 현재 ‘리처드 앓이’ 중이다. 지난 14일부터 4일 동안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이후, 계속해서 리뷰가 올라오고 있다. 각종 SNS에 남겨진 반응들을 보면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뛰어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는 물론 ‘리차드’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기서 리차드는 과거 군주의 권력을 다투는 악랄함도 왕좌의 근엄한 모습도 아닌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작품은 160분의 시간동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며 지루한 시간을 허용치 않았다.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위트 있는 표정과 대사들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꼽추의 형상을 위해 배낭처럼 등에 맨 검정 의상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등 관객의 과몰입을 방해하면서 깨어있는 관람을 유도해나갔다.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5세기 영국 장미전쟁의 긴장되고 어두운 모습은 찾기 힘들었으며 분위기는 오히려 현대적이었다. 위트로 치장된 대사와 설정에 극장 안은 웃음이 가득했다.

2층 난간에서 요크 공작부인이 자신의 아들인 리차드를 맹비난하며 저주를 퍼붓는 속사포 랩 수준의 독설, 리차드가 무대 한 가운데에 길게 늘어진 마이크를 잡고 속삭이는 독백은 마치 힙합 뮤지션을 연상케 하며 가히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리차드의 신체적 결함과 불편한 걸음걸이는 드러머의 비트감 있는 라이브 속에서 그 만의 스웩으로 승화된다. 그의 군권 장악을 위한 악랄한 욕망은 열정이었으며, 권모술수에 능한 매력적인 모습과 유머를 겸비한 소통능력은 악당이 아닌 한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마저 일으킨다.

서막에서 리차드는 자신이 지닌 외형적 흉측함과 현재의 상황에 결국 스스로 악당이 되기를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악한지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자의식적인 악행인 것이다. 연출 자체는 의도적으로 악한 행위에 초점을 두어 다루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그의 두 형인 클래런스와 에드워드왕 사이의 증오와 클래런스의 죽음, 신하들의 적대감 조장, 에드워드 왕의 후계자이며 어린 조카인 에드워드 4세의 런던탑 유배와 살해 등 그의 악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강한 리더쉽으로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왕좌를 차지한다. 악행의 과정에서 계속되는 리차드의 독백은 다양한 감정들을 드러내며 누구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악함과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는 악행을 저지른 악당이었지만 양심이 없는 악마는 아니었다. 말미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인간 리차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 한 마리에 나의 왕국도 내어 주겠어” 괴로움 속의 나약한 인간 본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욕망의 끝은 결국 살아남고자 하는 것, 그렇게 욕망을 속삭이던 마이크 줄에 거꾸로 매달린 채 공중으로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올 해 봄 황정민의 연극 무대 복귀작이자 원캐스트로 화재를 모았던 전작에 이어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내한작, 그리고 6월 29일부터 3일 간 국립극단 주최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장 랑베르-빌드, 로랑조 말라게라 공동연출한 ‘리차드 3세’가 공연될 예정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