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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가 ‘인간 자본주의’를 만든다
“데이터가 화폐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본은 지금처럼 강력한 신뢰와 신용을 전달하지 못하며, 금융자본주의 개념에 바탕이 되는 자본이 권력과 동일하다는 믿음을 잠식할 것이다. 풍부한 데이터는 시장을 활성화하고 금융자본의 가치를 떨어뜨려 시장과 금융자본을 분리할 것이다. (‘데이터 자본주의’에서)

데이터 기반 혁명적 시장 메커니즘 제시
탑승자에 ‘수다 운전자’정보 제공 대성공
주문고객에 옷·액세서리 다섯개씩 배송
소비자도 몰랐던 취향 제공 패션계 돌풍


#2015년 9월, 온라인시장 20주년을 맞은 이베이는 마땅히 성공을 축하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기념행사의 무대에 오른 신임최고경영자 데빈 위니그의 표정은 어둡고 연설은 위로에 가까웠다.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이베이를 ‘새롭게 출발해야만 하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세계최대의 시장 이베이를 돋보이게 해주던 매력은 어디 간 걸까?

#같은 시기, 인터넷 스타트업 블라블라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블라블라카는 이베이와 유사한 온라인시장이지만 매달 수백만명의 승차자와 운전자를 연결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베이가 가격 기반의 경매에 초점을 맞췄다면, 블라블라카는 사용자가 마음에 드는 운전자를 간편하게 찾아낼 수 있도록 ‘수다스러운 운전자 순위’ 등 가격보다 다양한 정보에 주안점을 뒀다.

이 두 사례는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빅데이터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데이터 자본주의’(21세기북스)에서 화폐 기반의 자본주의가 데이터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고 선언한다. 가격에 담긴 정보 보다 데이터가 알려주는 정보의 의존성이 커간다는 얘기다. 핵심은 정보다.


쇤베르거는 책을 통해 기존 화폐 중심 시장이 야기해온 문제점을 지적하고, 데이터가 풍부한 시장의 특징과 작동방식에 이어, 기업이 직면한 과제와 기술·노동의 의미 등을 차근차근 설명해나가면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도래를 얘기한다. 그동안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시장은 화폐를 통해 작동해왔다.가격과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의 효과적인 교환을 위한 척도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대상의 속성을 가격이라는 숫자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거래자나 구매자, 시장의 미묘하고 세부적인 정보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가령 상품 진열대에 놓인 신발을 보고, 구매자는 모양은 마음에 쏙 드는데 색상은 그저 그렇다면, 가격을 조금 깍아주면 지금 상태로 구입하거나 마음에 드는 색상을 구할 수 있다면 웃돈을 주고 살 의향이 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구매자는 같은 모양에 원하는 색상의 신발이 다른 상점에서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낙담한 채 상점을 떠난다. 다른 상황에선 모양과 색상, 사이즈가 완벽하지만 돈이 부족해서 신발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2주 뒤 돈을 들고 상점에 와보니 신발이 예상 만큼 빨리 팔리지 않아 가격이 내려가 있다. 그러나 이번엔 발에 맞는 신발이 없다.

이런 경우, 시장의 결과물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가격이 구매자와 판매자의 우선순위와 선호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매칭이 이뤄지지 않는다.

반면 데이터 기반 시장은 가격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때문에 개인의 선호도, 사이즈는 물론 재고와 가격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매칭이 가능하다.

한 예로, 미국 패션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티치픽스는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옷과 액세서리를 다섯가지씩 상자에 넣어 보낸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객과 연결, 취향에 맞게 제안하는 식이다. 상품에는 가격을 매기지 않고 사후에 가격이 정해진다.스티치박스는 사고 싶은 물건을 찾으려고 소중한 시간을 쓰기 보다 어울리는 물건을 찾아주는 데 돈을 지불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일종의 중개역할을 하는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은 최고 알고리듬 책임자를 비롯 70명이 넘는 데이터과학자다. 표준적인 소셜 필터링 엔진보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기술로 고객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취향까지 알아낸다.

데이터 기반 서비스는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물건과 서비스를 연결, 시장 참여자의 만족도가 높을 뿐만아니라 낭비도 줄어든다. 종래 정보의 제한 때문에 잘하지 못했던 시장의 목표인 ‘최적의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거래과정의 상당부분이 개인의 번거로운 선택과 결정 과정 없이 자동화할 경우, 세상은 지금과 크게 달라진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결정은 이런 자동화된 결정 시스템에 맡기고, 보다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에서만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과 감각이 경쟁력이 된다.

저자는 “인간의 선택과 선호도 등 인간의 행동에 대한 축적된 엄청난 데이터와 딥러닝은 잘못된 판단을 줄여주고 개인별 선호도에 맞춰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동력으로 삼아 시장을 재가동하면 경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데이터 시장의 궁극의 장점은 협업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인류가 성공적으로 협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매커니즘으로 시장과 기업을 꼽는다. 시장이 주도하는 협업에 풍부한 데이터라는 윤활유가 더해지면 교육 뿐아니라 건강보험, 기후변화까지 까다로운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희망이다. 저자는 “이는 분명 산업혁명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며 기존의 자본주의를 재발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폐에 매몰됐던 자본주의에서 개개인의 인간을 위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데이터 중심 시장의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데이터와 머신 러닝에 대한 의존성에 따른 집중화와 시스템 오류는 불안요인이다.

데이터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낯설지만 디지털경제의 고도화된 형태로 봄 직하다.

이윤미 기자/@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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