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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살 이후 직업만 37개…소년가장 태진아의 ‘인생역전’
14살에 서울에 맨손으로 올라와 37가지 직업을 전전한 태진아. [사진=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헤럴드경제=이슈섹션] 트로트 황제의 고난을 이겨낸 인생역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16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데뷔 46년 트로트 황제 태진아의 진짜 이야기가 시청자를 감동케 했다.

태진아의 유년시절은 못 배우고 찢어지게 가난했다.그래서 그의 학력은 국졸이었고, ‘히트 제조기’ 작곡가임에도 악보도 볼 줄 몰랐다. ‘동반자’ 등 자신의 히트곡 절반은 입으로 쓴 곡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태진아는 또 자신은 노래도 잘 못 불렀으며 후천적 노력으로 노래를 잘 하게 됐다고 소개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런 태진아가 성공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태진아는 14살에 서울에 맨손으로 올라와 37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했다. 구두닦이도 하고 세차장 세차돌이도 해봤다.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태진아는 “철가방보다 무거웠던 건 책임져야 했던 동생들이었다. 내가 당시 14살이었는데 동생들이 11살, 7살, 4살 이랬다. 걔들이 배가 고프면 안되지 않나. 어릴 때부터 서울간다 생각했다. 학력도 자신있게 국졸이라 얘기한다. 가난해서 공부를 못 한 거다. 돈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건 내가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구두 닦고 배달 일을 하며 죽을 힘을 다해 한푼 두푼 모은 돈. 그에게 돈은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성공의 상징이었고 부모님의 땅은 아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어린 나이에 3년동안 적금을 넣어서 그 돈으로 땅을 사 부모님에게 선물했다.

데뷔 당시 신인상을 받는 등 주목받았지만 그 후 오랜 무명시절을 겪었던 태진아는 결국 미국 이민을 택했다.

태진아는 자신이 미국으로 간지 두 달 지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다. 한국행 비행기 값이 없어 임종을 못 지켰다는 그는 4년 뒤 귀국, 어머니 산소에서 펑펑 울었다는 기억을 떠올려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나의 성공 99%가 아내의 내조 때문이었다” 태진아. [사진=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그렇게 고생만하다 9년만에 귀국한 태진아는 아내를 향한 마음을 담은 ‘옥경이’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게 됐다. 곧이어 ‘옥경이’로 연타석 홈런을 쳤다.

그는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을 때 좋은 결과가 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태진아는 여러 히트곡을 내며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고, 대체불가 트로트 황제로 거듭나게 됐다.

때문에 태진아는 뉴욕 생활이 힘들었을 때 만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유독 남달랐다.

태진아는 “내가 오늘날 회사를 만들고 가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의 모든 99%가 이 사람의 내조 때문이었다”며 그의 성공을 아내의 몫으로 돌렸다.

현재 최고의 자리에 오른 태진아는 자신에게도 힘들었던 시기를 잊지않고 있다. 그래서 후배 가수들에게 지금도 용돈을 주며 손을 내밀 줄 아는 선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태진아는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은 없다. 이 상태만 유지하면 성공한 삶 아닐까. 그게 내 바람이다”고 자신의 절제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단 1분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최근엔 아이돌 출신 강남과 듀엣곡을 발표했고, 시장도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태진아는 대한민국 트로트 황제로 손색이 없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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